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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새로운 항해에는 새로운 지도가 필요하다

오선민 2010. 6. 29. 08:07

새로운 항해에는 새로운 지도가 필요하다


베이비붐세대, 은퇴, 시니어, 창업,, 요즘 내가 많이 접하는 단어들이다. 고령화 사회의 도래와 함께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시급히 풀어야 할 당면한 과제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이러한 흐름 속의 당사자인 나는 매우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 이유는 나는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5년 후 또 10년 후 해야 할 일들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 50이 되던 해에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하였다. 나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갈 것인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무엇인가? 나는 그때 사업을 하면서 대학에 겸임교수로 출강을 하고 있었는데 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매우 즐거워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함께 배우고 함께 가르치며 서로의 성공을 돕는다’ 그때 작성한 내 사명서의 마지막 구절이다. 그 후 나는 계속해서 배우고 가르침을 통하여 꾸준히 나 자신을 변화시켜 나갔다. 그리고 2년 전 시니어들이 제2의 삶을 준비하는데 좋은 안내자가 되겠다라는 비전과 함께 컨설팅회사를 창업하였다. <2014년 까지 시니어라이프 코치로 활동한다. 2015년부터는 시니어들과 함께 시니어들을 위한 사회적기업가가 된다> 이것이 나의 비전이다.

제2의 인생이란 무엇일까? 어느 적당한 시점을 정해놓고 그 전은 제1의 인생이고 그 후는 제2의 인생이라고 한다면 예로부터 제2의 인생을 그리 중요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꼭 통과해야만 하는 두 개의 문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사춘기라고 하는 문이다. 이 문을 잘 통과함으로서 우리는 유아기를 벗어나 사회적 책임을 지는 성인으로 성장할 수가 있단다. 이것이 제1의 인생의 시작이다. 다른 하나는 중년의 위기라고 하는 문이다. 이 또한 잘 넘어서야만 우리는 비로써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융은 제2의 인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인생의 오후는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 시기는 인생의 오전에 매달린 가엾은 부가물에 불과할 리가 없다. 오전의 의미와 중요성은 의심할 여지없이 개인의 발달, 외부세계에 자신만의 굳건한 영역을 구축하는 것, 자식을 낳아 종을 번식시키고 자식을 돌보는 것에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이 달성 되었을 때 - 그리고 달성된 것 이상일 때 - 돈벌이와 정복 그리고 생명의 연장을 이성과 상식의 한계를 넘어서 까지 계속 가속화 시켜야 하는가? 자연의 목적에 합치하는 아침의 법칙을 오후까지 연장하는 사람은 그 행위의 대가로 자신의 영혼에 손해를 끼치게 된다. 그것은 마치 어린이 같은 자기중심성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려는 성장기의 젊은이가 그 실수의 대가로 사회적 실패를 경험하게 되는 것만큼 확실하다. 돈벌이와 사회생활 그리고 가정과 자손의 번식은 자연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지, 결코 문화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는 자연의 목적과 의도를 초월하여 존재한다. 혹시 문화가 인생 후반기의 의미와 목적이 아닐까?

인생의 오후라는 새로운 세계를 항해하려면 새로운 지도가 필요하다. 오전에 사용하였던 지도로는 올바른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오전에 적용되어졌던 개념들을 새롭게 재정의 함으로서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태도로 새로운 항해를 시작해야 한다.

그동안 사회적 가치에 따라 명예와 부를 성공의 척도로 삼았다면 이제부터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을 성공이라고 해야 한다. 우리는 나이 듦의 성숙함을 평가절하 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퇴보하는 것이 아니며 나이가 들수록 점점 젊게 살 수가 있다. 우리는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으며 더욱 완숙해 질 수 있다. 우리 안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다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의 오전을 남성으로서 또는 여성으로서만 살아 왔다. 이제 우리는 숨겨진 또 하나의 성에 관심을 가짐으로서 여성성과 남성성의 조화를 통하여 더욱 완숙함을 추구해야만 한다.

나는 부엌에서 식사를 준비한다. 아내는 신문을 본다. 나는 설거지를 한다. 아내는 TV에서 프로야구 중계를 본다. 그러면서 안경을 찾는다. 나는 안경을 찾아주고 또 빨래를 갠다. 우리집에서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아내는 집안일을 못한다. 아니 싫어한다.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것은 고통이다. 나는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못하지는 않는다. 학교 다닐 때 자취도 했고 또 한 3년 울산총각 생활도 했다. 그리고 시간도 아내보다는 자유로운 편이다. 그래서 나는 3년 전에 선언을 했다. 앞으로 집안일은 내 책임이라고. 이제 아내는 반찬투정도 한다. 그런 아내가 순간 얄밉기는 하지만 잠시 후엔 혼자 웃기도 한다. 나는 아내에 대한 나의 이런 태도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던진 느낌이다. 그 대가로 나는 자유를 얻었고 아내와의 좋은 관계를 얻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할 때 최우선의 가치는 관계이다. 사회적으로 요구되어지는 가치들- 남자, 나이, 역할 등-은 그 다음이다. 한번은 딸아이로부터 나의 단점에 대해 비판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 황당했던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내가 가진 부모라는 권력으로 제압하는 것이고, 하나는 딸과의 관계를 위해 비판을 수용하는 것이었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고 그 대가로 아이들과의 신뢰관계를 선물로 받았다.

“인생의 전반기에 우리는 사회에 봉사한다. 이것은 종속이다.
인생의 후반기에 우리는 내면으로 돌아선다. 이것은 해방이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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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원주방송대동문회
글쓴이 : 박현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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