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감상

한 식구 (외 1편) / 문정

오선민 2011. 8. 16. 08:52

    한 식구 (외 1편)

 

 

                                문 정

 

 

아직 아침쌀도 안치지 않은 함석집으로

제비 한 마리 먹이를 물고 돌아온다

처마 밑에서 입을 짹짹 벌려대는 제비새끼들

귀가 지붕보다 높은 감나무가 내려다본다

제비는 주춤 망설이다가 그 중 제일

입을 크게 벌린 녀석에게 먹이를 물려준다

소란에 잠이 깬 감나무의 어린잎들도

여기저기서 제가 먼저요 제가 먼저요

입을 크게 벌리면 당연 배가 제일 고프고

입을 작게 벌리면 한식경 쯤 참을만하겠지만

제 몸통처럼 생각이 느린 감나무는

아침 일찍 지어놓은 햇볕을 밥상에 차려놓고

크고 작은 입들에게 골고루 떠먹여준다

또 먹이를 잡으러 날아가는 제비의 날개깃에서

맑고 푸르른 빛이 마당으로 떨어진다

따뜻한 베트남에서 시집 온 새댁도 마루에 앉아

한쪽 젖을 말끔하게 빨아먹은 아이에게

밥쌀 한 줌 더 안치 듯 나머지 젖을 물려준다

마당에 햇살 몇 포기가 제법 통통하게 자라 있다

 

—《시와 사람》2010년 여름호

 

 

         첩첩산중 복숭아나무

 

 

누군가 첩첩산중을 지나다가

더는 갉아먹을 살이 없을 때 내던져버렸을 것이다

복숭아씨 하나

의문부호처럼 문득 싹을 틔우고 은근슬쩍

오는 봄에도 싹을 틔우고는 하여 저렇게

그늘 몇 폭 붙잡아 올려쳐 놓게 되었을 것이다

새살림의 설계도인 양

마음으로 매만지고 그려나가는 일생의 꼭지인 양

지나가는 이 아무도 없는 첩첩산중에

꽃을 피워놓고 몇날며칠 누구인가를 기다리는

일력에 손잡이도 쪽문도 없는

더욱이 편지지도 전화기도 없는 복숭아나무

누군가 내던진 돌멩이를 맞아야만

꽃봉오리를 우묵하게 닫는 저녁이 온다는 것도 모르는

점점 첩첩산중이 되어간다는 것도 모르는

저 복숭아나무.

 

—《열린시학》 2009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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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 / 1961년 전북 진안군 백운면 출생. 전북대 국문과 졸업. 2008년〈문화일보〉신춘문예 당선. 현재 전주 우석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