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감상

[진은영의 시로 여는 아침] 행복한 사랑은 없다

오선민 2011. 8. 31. 10:50

루이 아라공

아무것도 인간에게 확실한 것은 없다
그의 힘도 그의 약점도 그의 마음도
그리고 그가 두 팔을 벌렸다고 생각할 때 그 그림자는 십자가의 그림자
행복을 끌어안았다고 생각할 때 그는 행복을 으스러뜨리고 있으며
그의 삶은 야릇하고 고통스런 결별인 것을
행복한 사랑은 없다
인생, 그것은 무기 없는 병정들을 닮았다
다른 운명을 위해 옷을 입힌 병정들을
그들이야 아침에 일어난들 무엇하리
저녁이면 할 일도 확신도 없는 그 모습 다시 볼 것을
이렇게 말하라, 나의 생이여 그리고 눈물을 참으라
행복한 사랑은 없다
(중략)
고통으로 이어지지 않는 사랑은 없다
멍들게 하지 않는 사랑은 없다
시들게 하지 않는 사랑은 없다
너에 대한 사랑이든 조국에 대한 사랑이든
울음을 먹고 살지 않는 사랑은 없다
행복한 사랑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둘의 사랑이다


저지대의 맨홀이라도 된 듯 온갖 불행들이 빗물처럼 날 향해 몰려드는 기분일 때가 있습니다. 다들 확신에 차서 살아가는데 나만 이 모양이야. 그런 날은 인간에 대한 보편적 단언들을 읽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가령'아무것도 인간에게 확실한 것은 없다'와 같은 문장들 말입니다.'뜻밖의 사태에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이 나 하나는 아니구나.'이런 생각에 마음이 조금 풀어집니다. 아라공은 엘자 트리올레와의 열렬한 연애로 유명합니다. 아내의 눈동자에서 "온갖 태양들이 그리로 와 제 모습을 비춰 보는 것을/ 온갖 절망들이 그리로 뛰어들어 죽어가는 것을" ('엘자의 눈') 보았다고 노래했어요. 그녀의 빛나는 눈만 봐도 세상의 절망이 다 죽었다고 느낄 만큼 행복해 했던 시인조차 단언하네요. 행복한 사랑은 없다고. 그러니 오늘 연인을 향해서든 세상을 향해서든 혼자만 뜻대로 안 되는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고 계신 여러분, 너무 슬퍼하진 말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