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감상

[스크랩] 풍장 1 / 황동규

오선민 2012. 6. 5. 16:09

풍장 1

         

                       황동규

 

 

내 세상 뜨면 풍장 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택시에 싣고 군산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 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통통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튀기는 씨들을

우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바람을 이불처럼 엎고

화장도 해탈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출처 : 원주글무리
글쓴이 : 오선민3(국문과대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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