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닭갈비 집에서 (외 1편) / 권혁웅
춘천닭갈비 집에서 (외 1편)
권혁웅
지금 당신은 뼈 없는 닭갈비처럼 마음이 비벼져서
불판 위에서 익고 있지
나는 당신에게 슬픔도 때로는 매콤하다고 말했지
당신이 생각하는 그이는
이미 오이냉국처럼 마음이 식었다고 일러주었지
그이를 한 입 떠 넣는다고 해서
당신 마음의 뼈는 돌아오지 않는 거라고
닭 껍질처럼 오돌토돌한 소름은
숨길 수가 없는 거라고 얘기했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앞치마를 두른 채 조금 튄, 당신의 슬픔을 받아내는 일
당신은 없는 그이를 생각하고
나는 고구마와 함께 익어가는 당신을 생각하고
그렇다면 우리의 삼각관계는
떡, 소시지, 양배추, 쫄면으로 치장한다고 해도
그냥 먹고 남은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
나는 조금 속이 타서 찬물을 마셨지
나는 당신 앞에서 물먹은 사람이 되었지
그것도 셀프 서비스였지
조마루 감자탕 집에서
부장님은 이곳에 없다
눈발처럼 날리는 결재서류 너머에 있다
올해 처음 내린 눈처럼 그대는 깨끗한 서류를 밟고 왔다
그대의 자존심은 척추까지 부러졌다
봐라, 골수가 다 새어나온다
이건 눈물이 아니야
참이슬 먹은 그대 눈에 더러운 이슬이 맺혔다
그대의 얼굴은 우거지처럼 풀이 죽었고
그대가 유지했던 형체는 젓가락만 대도 무너진다
부장님에게는 골다공증이 없고
부장님의 허리는 젓가락보다 꼿꼿하다
화탕지옥이야, 마누라만 아니면 여기 안 있어
아내는 먼 데서도 그대를 지탱해준다
눈발처럼 내미는 아내의 하얀 손,
그대는 금세, 끓는 수제비처럼 조금 부푼다
조금 부었다고 말해도 좋다
그대의 정신이 들깨처럼 천천히 풀어지는 동안
제 부피를 늘리다가 졸아붙는 국물 속에
감자만이 멀뚱멀뚱 놓여 있다
여기가 어디지? 하는 표정이다
—《현대시학》201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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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 1967년 충북 충주에서 출생. 고려대 국문과와 동대학원 졸업.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등단, 1997년 《문예중앙》으로 시 등단. 시집 『황금나무 아래서』『마징가 계보학』『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소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