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감상

[스크랩] 언니들 / 이은화

오선민 2012. 11. 8. 17:20

언니들

 

   이은화

 

 

 

파란 풋사과를 야금야금 먹으면

입안에서 새들 노래와 들꽃과 해변이 펼쳐지던

풋사과는 달콤한 절망이야, 언니들이 경계하며

나방처럼 날아들던

 

풋을 잃은 사과밭에서 먹는 빨간 사과 맛

해변과 꽃과 노래는 어디로 갔을까 입안에서 펼쳐지던

딱딱한 의자처럼

사과는 사과 맛일 뿐

그 많은 맛들은 누구 입속으로 숨었나

 

구름이 사과밭을 지나갔을 뿐인데

장미가 피었다 지고 있을 뿐인데

풋사과 맛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발부터 긴 머리칼을 물들이던 떨림의 맛

 

봄이 와도 풋사과는 없지

고양이의 새콤달콤한 울음이 늙어버린 사과밭

 

풋사과는 빛나는 독이야, 언니들이 경계하며

딸 수 없는 풋사과를 추억하는

 

아련한 풋사과는 먼 미지의 맛, 아니 가까운 과거의 맛

언니들을 달콤한 지옥으로 초대하던

범할 수 없는 천상의 맛

 

 

 

                     —《현대시학》201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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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화 / 1969년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2010년《詩로 여는 세상》봄호로 등단.

출처 : 푸른 시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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