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감상

밥상을 버리며 / 이상국

오선민 2012. 12. 13. 13:58


밥상을 버리며

이상국
오래 받아 먹던 밥상을 버렸다
어느 날 다리 하나가 마비되더니
걸핏하면 넘어지는 그를 내다 버리며
어딘가 갈 데가 있겠지 하면서도 자꾸 뒤가 켕긴다
아이들이 이마를 맞대고 숙제를 하고
좋은 날이나 언짢은 날이나 둘러앉아 밥을 먹었는데……
남들은 다 어떻게 살든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때로는 하고 또 하는 잔소리에
아이들은 눈물밥을 먹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아내는 누구의 편도 들지 못하고
딱하다는 눈총을 주기도 했지
나는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가족들에게, 실은 나 자신을 향하여
쓸데없는 호통을 치기도 했지
그러나 한끼 밥을 위하여 종일 걸었거나
혹은 밥술이나 먹는 것처럼 보이려고
배를 있는 대로 내밀고 다니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속옷 바람으로 둘러앉아
별일도 아닌 걸 가지고 밥알이 튀어나오도록 웃던 일들을
그는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오래 받아 먹던 밥상을 버렸다
그러나 그가 어딜 가든 나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라는 걸 나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