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배추벌레 사원/ 이주언
배추벌레 사원/ 이주언
쌈밥을 먹다
구멍 송송 뚫린 배춧잎
수도승 맨발이 굽이굽이 넘어갔던
잎맥을 바라본다
발등, 무릎, 가슴 내어던지며
원왕생 원왕생 바닥을 기며
태양계 한 바퀴 돌아
느린 행보로
무수히 남긴 석굴사원
긴 행려를 본다
-시집『꽃잎고래』(詩와에세이,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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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더 높은 차원의 범위나 굴레를 이르는 말로 ‘부처님 손바닥’이라고 한다. 느린 걸음으로 배춧잎을 쏭당쏭당 파먹고 있는 배추벌레를 보면 그 몸짓이 마치 부처님 손바닥 안에 놓인 인간의 모습처럼 비쳐진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배추벌레들에게는 인간의 손바닥이 부처님 손바닥 아니겠는가. 상념이 거기까지 미치면 배추벌레가 고물고물 기어간 한 생이나 사람의 한 평생이 무엇이 다를까.
그런 인식과 더불어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등가로 여기면서 측은지심이 발동했다. 인간과 모든 동물, 미물들까지도 자신과 다를 바 없는 대아(大我)의 세계로 든 것이다. 그러니 세상의 어느 부분도 함부로 떼어 내버릴 수 없고, 결코 나와 무관할 수 없다. 따라서 대아는 곧 무아이다. 대아의 경지에서 바깥세계를 관찰할 때에는 남녀도 노소도 빈부도 생사도 종교도 원근도 시비도 일체 차별의식이 끊어진 진성의 세계인 것이다.
‘수도승 맨발이 굽이굽이 넘어갔던 잎맥을 바라’보며 인간의 고단한 삶도 들여다본다. ‘발등, 무릎, 가슴 내어던지며’ 생애를 관통하는 오체투지. 무량수 부처님 앞에서 두 손 모아 ‘원왕생 원왕생’ 지난 생과 금생에 지은 죄업을 남김없이 소멸하고 다른 내생을 꿈꾸어보는 것이다. 하지만 깨달음이란 과연 있는 것인가. ‘태양계 한 바퀴 돌아 느린 행보로’ 깨달음을 찾아 헤매지만 배추벌레는 배춧잎 속에서 나비되어 날아가는 게 고작이다.
넓은 산천경계 어느 곳도 좁은 배추입 속보다 나을 바가 없다. ‘무수히 남긴 석굴사원 긴 행려’의 대가로 나비가 된 것은 아닐 것이며, 전생의 간곡한 기도에 의해 우리들이 인간으로 태어난 것도 아닐 것이다. 다만 시간은 엄정하고도 혹독한 것. 시간의 손아귀에서 천천히 소멸되는 시인의 마음도 이토록 가혹하다. ‘무수히 남긴 석굴사원’의 허무. 결국은 모든 삶을 허구로 만들지 않는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싹트는 생명에 대한 외경심.
쌈밥을 먹다가 배춧잎 한 장 막 입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부처와 배추벌레가 하나이고, 나와 배추벌레가 하나이고, 즐거움과 괴로움이 하나이고, 흙과 돌과 금덩이가 하나이고, 기쁨과 언짢음이 하나이고, 하늘과 산과 바다가 하나이고, 문득 점진적으로 닦아 열리는 내 마음의 긴 행려.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