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감상
빨래 / 이숙희
오선민
2013. 3. 18. 17:57
빨래
이숙희
낡은 건조대에 빨래를 너는데
덥썩 어머니의 마른 뼈가 잡힌다
만질 때 마다 차갑고 딱딱한 인공관절에서
그렁그렁
쇳소리가 난다
다리를 곧추세우며 애써 서 있는 건조대에
반 토막으로 접힌 어머니의 생이 걸려있다
거꾸로 매달려 태엽을 풀고 있는 몽땅한 그림자,
허기진 짐승이 마른 등짝을 아귀차게 발라대어
햇살 아래 떨어진 기억의
각질들이 희끗하다
쉽게 바람의 길을 내주지 않았던 꼿꼿한 고집이
변덕스런 날씨에 어깨를 늘어뜨린 기죽은 모습
달려오던 시간의 발걸음은
이곳에서 멈추었다
소멸될수록 더욱 뚜렷해지는 기억의 그림자들
길게 목을 늘여 어머니의 집으로 들어가고 있는지
헐거워진 갈비뼈에 손을 넣어
봐도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바람만 사는 어머니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