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감상

[스크랩] 꽃의 안부/ 고진하

오선민 2013. 4. 27. 03:40

꽃의 안부

 

   고진하

 

 

 

꽃의 안부부터 물었다 굳이

내 안부를 묻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았다

양봉가 이씨는 꽃을 따라 북상 중인데

시방 안산에서 꿀을 받고 있단다

뒷산을 올려다보니

아카시아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곧

쏟아질 꽃비의 후광 속으로

불콰한 얼굴의 이씨가 지나가고

드문 야생벌들이 닝닝거리며 지나가고

산비둘기도 끼룩끼룩 지나가고

지나갈 것들이 환(幻)처럼

지나간 뒤꼍을 서성이며 난

지속가능한 미래를 또 생각해보는 것인데

이 비대한 문명의 광휘 속에서

꽃의 안부부터 묻는 당신

나의 안부, 가족의 안부 따위 묻지 않고

심란한 음성으로

오늘밤 야반도주하듯

아카시아 꽃비 맞으러 갈 거라고

눈부신 꽃비의 후광에 흠뻑 젖으러 갈 거라고

 

 

 

                          —《詩로 여는 세상》2012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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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 강원 영월 출생. 1987년《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프란체스코의 새들』『얼음수도원』『수탉』『거룩한 낭비』등.

출처 : 푸른 시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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