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감상
거진 / 허연
오선민
2013. 11. 1. 14:51
'좋은 시·아름다운 세상' 『詩하늘』詩편지
거진
허연
당신이 사라진 주홍빛 바다에서 갈매기 떼 울음이 파도와 함께 밀려갔다 오지 않는다 막 비추기 시작한 등대의 약한 불빛이 훑듯이 나를 지워버리고 파도 소리는 점점 밤의 전부가 됐다 밤이 분명한데도 밤은 어디론가 가고 파도만이 남았다 밤은 파도만 남겼고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내내 파도 위로 가끔 별똥이 떨어졌다 바스락거리던 조개의 죽음들이 잠시 빛났고 이내 파도에 묻혔다 소식은 없었다 밤에 생긴 상처는 오래 사라지지 않는다 도망치지 못했다 거진항
ㅡ출처 : 『시인수첩』(2013. 여름)
ㅡ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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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물회가 다 같은 물회는 아니다
신선도도 그렇지만
손맛과 앙념과 인심 맛이 어울려야 한다
밤에 생긴 상처는 오래 사라지지 않는다는
화자의 주장대로라면
거진항에서의 추억거리는 그리 살맛나지는 못했을 터
당신이 사라진 주홍빛 바다가 밤이 되고
밤이 된 바다엔 파도만 남고
기다리는 당신은 오지 않고
결국 소식은 오지 않았다는
그리하여 밤에 생긴 상처는 오래 사라지지 않았다고
그 상처에서 도망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거진항에서의 사랑은 거대한 썰물이다
썰물에 뱉어놓을 만큼의 상처였다면
밤바다도 치유할 수 없었을 테다
별똥별의 등장도 조개의 잠시 빛남도
어떤 희망을 주지 못한다
한 마디로 너와 나의 사랑은 무제였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