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감상

모서리를 몸속에 다 접어 넣는데 걸리는 시간 / 조용숙

오선민 2013. 11. 26. 15:52

'좋은 시·아름다운 세상' 『詩하늘』詩편지

 

 

 

 

모서리를 몸속에 다 접어 넣는데 걸리는 시간

 

조용숙

 

 

머리로 밀고 나온 세상은

 

둥근 열쇠로는 열리지 않는 문이다

 

네 귀퉁이마다 반듯하게 각을 세워

 

네모난 열쇠를 만든다

 

각을 세워야만 들어갈 수 있는 세상의 모서리들

 

네모난 집, 교실, 사무실, 병원……

 

그 네모난 관 속에 누워

 

이승 문 열고 나가는 시간으로 평생을 바쳐

 

겨우 동그란 봉분 하나 완성한다

 

 

 

ㅡ출처 : 시집『모서리를 접다』(詩로여는세상, 2013)

ㅡ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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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에 와서 살다가 가는 일이

겨우 동그란 봉분 하나 완성하는 일이다

이러려고 아웅다웅하며 살았는지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되고 만다

둥근 머리로 빠져나왔는데

둥근 열쇠로는 열지 못하는 세상

각진 세상의 모서리들에 맞춰 살아야 하니

어처구니없기는 마찬가지다

맞춰 살다 살다가 돌아가는 길에 누워보는 곳도

가진 모서리밖에 없는 3자 3자 8자 관이라니

모서리를 몸속에 다 집어넣는데 걸리는 시간이

이렇게나 길다

이러느라고 평생을 각진 세상에서

각지게 된 마음들과 격을 맞추느라

뼈가 어스러지도록 나를 탕진한 게 아닌가

어쩌면 부끄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