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감상

무릎이 빚은 둥근 각 / 이병일

오선민 2013. 12. 22. 03:18

무릎이 빚은 둥근 각

 

   이병일

 

 

 

나는 무용수의 세워진 발끝보다

십자가 앞에서 기도할 때의

여자의 무릎이 빚는 둥근 각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무릎부터 시작된 기도의 자세,

여자의 무릎은 점점 더 둥그렇게 휘며

정신은 수직에 가까워진다

 

예배당 열린 창의 커튼이 휘날리는데도

방석과 여자의 무릎 사이는 점점 깊어진다

 

글썽이는 것들은 모두 무릎 속에 묻히고

감추어진 두 발은 엉덩이 밑에서 십자가가 되고

오늘도 여자는 어깨와 몸통을 비추는

빛의 기도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뼈와 뼈 마디마디를

온통, 주일 아침 호면(湖面)으로 잠그고 있다

 

여자는 우아하게 다리를 뻗고도 싶겠지만

기도를 위해

무릎의 둥근 시간을 펼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수요일과 금요일 새벽 혹은 저녁마다

어둠뿐인 곳에서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

여자의 무릎 기도,

꽃이 되고 꽃눈나비가 되고 하나님이 되어

어제 쓴 참회록을 들여다보고 있을 듯하다

 

그때 나는 기도에 집중된 여자의 무릎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둥근 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포엠포엠》2013년 겨울호

-------------

이병일 / 1981년 전북 진안 출생. 2007년 《문학수첩》시 등단. 2010년 〈조선일보〉신춘문예 희곡 당선. 시집『옆구리의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