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감상

비 오는 날의 축제 / 동시영

오선민 2013. 12. 22. 03:45

비 오는 날의 축제

 

   동시영

 

 

 

이 순간 나는 시의 마을 방향

 

우리들의 어제는 기념비

벌써 시간의 꽃으로 피어나고

오늘은 비에 젖어 모든 경계가 시원하게 떠내려가고 있다

 

태어나자마자

날아가는 연습에 시간을 다 날려 보내고는

시간 속으로 날아가는 갈대새 떼

빗속에 쭈그리고 앉아 쉬고 있다

 

해 없어 일 없는

해바라기들도 비의 벤치에 앉아 쉬고

해 있어야 일 있는

일용직 사람들도

노동을 안주 삼아 벗어 놓고는

새벽 소주 향에 깊이 빠져들고 있다

 

살아가는 건

건너가는 것

그래서 우리에겐 다리가 있다

 

오늘,

나의 다리는

물방울 다리 건너

시의 마을을 거닐고 있다

 

 

 

                        —시집『십일월의 눈동자』(201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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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영 / 충북 괴산 출생. 2003년 《다층》으로 등단. 시집 『미래사냥』『낯선 神을 찾아서』『신이 걸어 주는 전화』『십일월의 눈동자』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