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감상

윤곽 / 허만하

오선민 2014. 2. 2. 12:25

'좋은 시·아름다운 세상' 『詩하늘』詩편지

 

 

윤곽

 

허만하

 

 

 어둠이 없이 빛이 빛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애처로운 빛의 순수. 그것은 절망이 아닌 외로움이다. 따지고 보면 사람도 사물도 외로움으로 자신의 윤곽을 간신히 견디고 있다. 접시 위에 놓여 있는 한 덩이 모과의 연두색 침묵을 보라. 광안리 앞바다를 가로지르는 강철 구조물의 아름다운 휘어짐을 보라. 명석한 자기 윤곽을 찾아 하늘을 헤매는 구름을 보라.

 

 

ㅡ출처 : 시집『시의 계절은 겨울이다』(문예중앙, 2013)

ㅡ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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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적 사유를 담아내는 대가,

은유를 좇아가는 시정신이 예사롭지 않다

허만하 시인에게 있어 시를 쓰는 일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을 다시 보는 일이다

자연의 물리적 경치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을

내부로 떠올려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허만하 시인에게 시는 정신적 풍경을 창조하는 것이다

시인은 세계와 나의 관계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무균질의 순수의 세계를 갈망한다.

어둠이 없이 빛이 빛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애처로운 빛의 순수처럼

빛이든 어둠이든 서로 삼투하지 않는 단독성의 “순수”는

늘 외롭고 고독하다

가장 윤곽을 강조하는 것이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것을 지키려 존재감을 들썩이는 지도 모른다

그 윤곽을 지키려 오늘도 누구나 목숨 건다

 

 

 

                                  詩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