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감상

종착역 / 정호승

오선민 2014. 2. 6. 11:58

'좋은 시·아름다운 세상' 『詩하늘』詩편지

 

 

 

 종착역

 

정호승

 

 

종착역에 내리면 술집이 있다

바다가 보이는 푸른 술집이 있다

술집의 벽에는

고래 한 마리 수평선 위로 치솟아오른다

사람들은 기차에서 내리지 않고

종착역이 출발역이 되기를 평생 기다린다

나는 가방을 들고 기차에서 내려

술집의 벽에 그려진 향유고래와 술을 마신다

매일 죽는 게 사는 것이라고

필요한 것은 하고 원하는 것은 하지 말라고

고래가 잔을 건넬 때마다 술에 취한다

풀잎 끝에 앉아 있어야 아침이슬이 아름답듯이

고래 한 마리 수평선 끝으로 치솟아올라야

바다가 아름답듯이

기차도 종착역에 도착해야 아름답다

사람도 종착역에 내려야 아름답다

 

 

 

ㅡ출처 : 시집『여행』(창비, 2013)

ㅡ사진 : 다음 이미지

-------------------------------------------------

 

종착역에 내리면 우선 마음이 푸근해진다.

마침내 도착했다는 안도감도 있지만

밤빛을 따라 여기저기 돌아보며

야경도 즐기고 포장마차에도 들를 수 있고

사람 사는 모습을 크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곳이 어디여서가 아니라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면 된다

그 옛날 함께 숨 쉬었던 그 공기라면

그보다 반가울 수 없겠지

사람 사는 모습을 보면 아름답다

사는 동안 어울려야 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내 고향 언저리 정겨운 술집은 이제 없다

시간에 업혀 사라지고 없다

고래 아니라 꽁치 한 마리도 치솟아 오르지 않는

냉기 날리는 술집밖에 없다

돈 주면 어디든 술집은 많다

정을 나누는 그런 곳은 이제 없다

 

 

 

                                  詩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