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감상

강 건너는 누떼처럼 / 엄원태

오선민 2014. 2. 28. 09:53

'좋은 시·아름다운 세상' 『詩하늘』詩편지

 

 

 

강 건너는 누떼처럼

 

엄원태

 

 

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 사랑이여.

 

그것을 마라 강 악어처럼 예감한다.

 

지축 울리는 누떼의 발소리처럼

멀리서 아득하게 올 것이다, 너는.

 

한바탕 피비린내가 강물에 퍼져가겠지.

밀리고 밀려서, 밀려드는 발길들

아주 가끔은, 그 발길에 밟혀 죽는 악어도 있다지만

주검을 딛고, 죽음을 건너는 무수한 발굽들 있다.

 

어쩔 수 없이,

네가 나를 건너가는 방식이다.

 

 

 

ㅡ출처 : 시집 『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창비, 2013)

ㅡ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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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으로 읽으면 마라 강을 건너는

누떼의 사투를 보는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이,

네가 나를 건너가는 방식이다 라는 대목에 오면

화자가 사랑에 대해 깊은 이해를 구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다

예수가 떠오른다

자신을 희생하여 인간과 하느님과의 화해를

스스로 실천한 나자렛 예수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듯이

누떼 중의 한두 마리의 희생이 전체를 구원하는

지극한 사랑을 읽는다

그냥 짐승의 생존 방식이라 이해하면 그만이지만

이 이야기를 인간에게 접목시키면 사뭇 달라진다

2천년을 사랑의 실천을 부르짖었음에도

피비린내는 끊이지 않는다

욕망의 전차가 어디쯤에서 멈출지 걱정이다

 

 

 

                                 詩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