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감상
쉰 / 김만수
오선민
2014. 3. 30. 23:39
'좋은 시·아름다운 세상' 『詩하늘』詩편지
쉰
김만수
나는 잘 소비되지 않았다
신화가 얽혀지던 불의 축제
뜨거운 페이지 뒤란에서
젖은 나무토막으로 웅크린 시간들
비춰지지 않았으므로
반사되지 않았고
나는 읽혀지지 못했다
사소한 서사에도
밀려났다 캐스팅되지 못했다
햇살이 낮게 굴러와 죽었다
찰방거리는 물길을 만들며 빛이 사랑이
번질 거라 믿었다 거짓이었다
수없이 개복하고
길을 만들고 성을 쌓았다 늦은 나무를 심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성 위에는
찢긴 깃발이 더 깊이 죽었다
나를 떠메고 가는 내가 보였다
ㅡ출처: 시집 『바닷가 부족들』(애지, 2013)
ㅡ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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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이면
하늘의 뜻을 알아듣는 나이다
志學, 若冠, 立志, 不惑을 거쳐 知天命에 이르렀으니
세상을 두루 섭력하고도 남을 나이다
게다가 그 흔적들은 얼마나 두텁고 견실할까
그런데도 시적화자는 스스로 낮춘다
부족하단다
살아온 날들이 부끄럽단다
찰방거리는 물길을 만들며 빛이 사랑이
번질 거라 믿었으며,
수없이 개복하고
길을 만들고 성을 쌓고 늦은 나무를 심었는데도
아무런 변화를 찾지 못했다 한다
사람은 대체로 크게 성공하지 못하면
자신을 낮추는 습관이 있는데
그것을 물질로 말할 것이 아니라
정신으로 말해야 하는 것이 맞으므로
크게 후회할 일이 아니다
사람답게 산 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싶다
詩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