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감상
나무의 유적 / 김경성
오선민
2014. 5. 23. 00:36
'좋은 시·아름다운 세상' 『詩하늘』詩편지
나무의 유적
김경성
얼마나 더 많은 바람을 품어야 닿을 수 있을까
몸 열어 가지 키우는 나무,
나뭇가지 부러진 곳에 빛의 파문이 일고 말았다
둥근 기억의 무늬가 새겨지고 말았다
기억을 지우는 일은 어렵고 어려운 일이어서
끌고 가야만 하는 것
옹이 진 자리,
남아 있는 흔적으로 물결무늬를 키우고
온몸이 흔들리도록 가지 내밀어
제 몸에 물결무늬를 새겨 넣는
나무의 심장을 뚫고
빛이 들어간다
가지가 뻗어 나갔던
옹이가 있었던
자리의 무늬는, 지나간 시간이 축적된
나무의 유적이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고
무늬의 틈새로 가지가 터진다, 잎 터진다, 꽃 터진다
제 속에 유적을 품은 저 나무가 뜨겁다
나무가 빚어내는 그늘에 들어앉은 후 나는 비로소 고요해졌다
ㅡ출처 : 시집 『와온』(문학의전당, 2010)
ㅡ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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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유적, 그것은 나이테다
유적의 절대적인 공신은 햇볕이다
그리고 물이고 흙이고 바람이다
이들을 먹고 자란 나무가 제 속에
하나씩 둘레를 만들고 몸을 키운다
그 힘으로 가지를 내고 잎을 내고
열매도 가진다
나무도 비바람에, 벼락에 상처를 입듯이
사람도 세상살이나, 사람 관계에서 그렇다
그렇지만 제 몸 속은 다 뜨겁다
나무의 유적이 햇볕의 보고라면 더 그렇다
그러니 가지도 잎도 가만히 있질 못한다
詩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