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감상

은행나무 / 박형권

오선민 2014. 5. 26. 21:48

'좋은 시·아름다운 세상' 『詩하늘』詩편지

 

 

 

은행나무

 

박형권

 

 

사람 안 들기 시작한 방에 낙엽이 수북하다

나는 밥 할 줄 모르고,

낙엽 한 줌 쥐여 주면 햄버거 한 개 주는 세상은 왜 오지 않나

낙엽 한 잎 잘 말려서 그녀에게 보내면

없는 나에게 시집도 온다는데

낙엽 주고 밥 달라고 하면 왜 뺨 맞나

낙엽 쓸어 담아 은행 가서 낙엽통장 만들어 달라 해야겠다

내년에는 이자가 붙어 눈도 펑펑 내리겠지

그러니까 젠장,

이 깔깔한 돈 세상에는

처음부터 기웃거리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었다

아직도 낙엽 주워 핸드백에 넣는 네 손 참 곱다

밥 사먹어라

 

 

 

ㅡ출처 : 시집 『전당포는 항구다』(창비, 2013)

ㅡ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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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잎이 건강에 좋다는 얘기는 아는데

그래서 건강을 좋게 하니까 돈에 버금가는 거라면

또 이해하겠다

이 시에 나타난 화자의 이야기로는

어딜 가든 뺨 맞거나 쫓겨나기에 딱 좋다

 

참 고운 노란 은행잎 책갈피에 넣어

거기에다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라고 쓴다

건네받은 그 사람 그걸 보고 감동 먹었을지?

그냥 기다려보는 거다

풀꽃 같은 마음이 있다면 분명히 눈빛을 보냈을 거다

내 마음에 은행잎 닮은 즐거움이 일었겠지만

돈보다 더 값진 마음의 선물이

그대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거다

 

올 가을에 우리 이런 일 한 번 해봐요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하고요

 

 

 

                                詩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