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감상

담쟁이는 담을 오른 적이 없다 / 김성호

오선민 2014. 6. 10. 17:39

'좋은 시·아름다운 세상' 『詩하늘』詩편지

 

 

 

 

담쟁이는 담을 오른 적이 없다

 

김성호

 

 

담을 빨리 기어올라서가 아니라

단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오르기에

담쟁이란 이름을 붙여준 것일 게다

신이 죽은 세상이라는 것은

신이 많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살아있는 신들도 실수를 하는데

담쟁이의 삶은 신을 능가한다

담쟁이는 한 번도 오르려 한 적이 없다

담쟁이는 앞을 향해 기어갈 뿐이다

장애물이 있으면 그를 피하지 않고

기어가기 때문에 담을 오르는 것이다

달리지 않고 기어가기 때문에

떨어지지 않고 막아선 벽도 오르고

더 높은 나무도 오를 수 있는 것이다

담쟁이는 꿈에서라도 단 한 번

담을 오르려고 욕심낸 적이 없다.

 

 

 

ㅡ출처 : 시집 『담쟁이는 담을 오른 적이 없다』(이룸나무, 2013)

ㅡ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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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는 담을 오른 적이 없다

다만 기어서 제 갈 길을 갔을 뿐이다

부지런히 갔기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을 테다

욕심낸 적이 없댄다

그렇다고 기어가기에 충분히 자라는 것도 아닌데

자랄 만큼 자라서는 자란 만큼 기어간다

제 분수를 안다는 거다

사람아, 너도 그러렴.

세상이 왜 이리 혼탁하고 어지럽겠나?

분수를 모르고 욕심을 내서 그런 거네.

욕심은 신을 능가하려는 교만에서 생기는 거라고

감히 외쳐본다

제 길에서 주어진 대로 열심히 사시게

사람아! 사람아!

 

 

 

                                   詩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