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감상

가을비 / 헤르만 헤세

오선민 2015. 3. 25. 16:27

 

 

 

 

 

 

가을비 / 헤르만 헤세


비, 가을비,

잿빛 너울을 쓴 산들,

지쳐 가라앉는 때늦은 이파리를 단 나무들!

뿌연 유리창을 뚫고

이별을 어려워하며 병든 한 해가 바라보고 있다.

물방울 떨어지는 외투을 입고 한기에 떨며

너는 밖으로 나간다. 길가에서

빛바랜 이파리 아래서

두꺼비와 도룡뇽이 취하여 더듬더듬 나오고

길을 따라 내리며

끝없이 물이 졸졸, 콸콸 흐르다가

풀밭 무화과나무 곁

성급한 연못에 고인다.

골짜기 교회 탑에서는

머뭇거리며 피로한

종소리가 방울방울 떨어져 내린다

사람들이 파묻고 있는 마을의 한 사람을 위하여.

그러나 너는, 사랑하는 이여,

슬퍼 말라 파묻힌 이웃을

슬퍼 말라 가버린 여름의 행복을

가버린 젊음의 굳건한 사람들을!

모두가 경건한 기억 속에 지속한다.

말 속에,모습 속에, 노래 속에 간직된다

귀환의 축제를 영원히 준비하며

새로워진, 보다 귀한 옷을 입고,

너는 간직하기를 도우라, 변화하기를 도우라,

그러면 네 마음에서 꽃이,

믿는 기쁨의 꽃이 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