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핑크는 핑크다 2 / 최승철
핑크는 핑크다 2
최승철
들어가지 않는 모자를 쓰겠다고 안간힘을 다해
땀 흘리는 모습이라니 얼마나 경건하고 야한 이미지냐?
삑사리죠, 형님
영국에서는 핑크란, 여우(여자) 사냥꾼을 속칭하기도 했다. 지식은 매순간 죽는다. 동성애자라는 문맥으로 읽는다면, 그녀들은 자신의 엉덩이에 제 엉덩이는 동성애를 원해요라고 쓴 꼴, 남한 지식인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대주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아닐 것이다 그것은 백인의 남근을 상징하기 때문
그럼 딸기코는 뭐냐?
핑크는 자본주의 메이커를 의미한다. 핑크는 장식에 구멍을 뚫다 라는 타동사다. 당신의 엉덩이를 뚫어달라는 바람이다. 당신, 항문 조심해! 발음상 항문과 학문은 동음이의어이다. 지식인이 변절되기 쉬운 까닭이다. 자체적인 내수시장을 이루지 못한 분단 상황에 대한 나의 통탄이다.
남자들의 두상은
이상하게 자신의 성기와 닮았어요
핑크는 클라이맥스 혹은 최고의 상태를 이르는 속어다. 대한민국 여성들 중 영어 스펙에 9백점 이상을 받던 전문직 종사자들에서부터 이 옷은 유행하기 시작했다. 핑크하게, 핑크하게도, 핑크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당신이 핑크이기 때문에 가능한 상상이다. 이제는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들이 그 옷을 입고 다닌다. 따라서 인식은 자본을 따라 변한다.
———
*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현대시》2015년 2월호
-------------
최승철 / 1970년 전북 남원 출생. 2002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갑을 시티』『키위 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