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감상
자화상 / 공광규
오선민
2015. 4. 1. 18:32
자화상
공광규
밥을 구하러 종각역에 내려서 청계천 건너
빌딩숲을 왔다가 갔다가 한 것이 이십 년이 넘었다
그러는 동안 내 얼굴도
도심의 흰 건물처럼 낡고 때가 끼었다
인사동 낙원동 밥집과 술집으로 광화문 찻집으로
이런 심심한 인생에
늘어난 것은 주름과 뱃살과 흰 머리카락이다
남의 비위를 맞추며 산 것이 반이 넘고
나한테 거짓말을 한 것이 반이 넘는다
그러니 나는 가짜다 껍데기다
올해 초파일 절에서부터 오후 내내 마신 막걸리가
엄지발가락에 통풍을 데리고 와서
몸이 많이 기울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어제는 사무실 가까이 와서 저녁을 먹고 간 딸이
아빠 얼굴이 가엽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나와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이가 똑같다
안구에 바람이 들어와서 건조하고
돋보기를 가지고 다녀야 읽고 쓰는 데 편하다
맑은 날에도 별이 흐리게 보인다
하늘이 흐린 건 아닐 것이다
눈이 침침한 것은 밖을 보는 것을 적게 하라는
몸의 뜻인지도 모른다
광교 난간에 기대어 청계천을 내려다가 보는데
얼굴 윤곽이 뭉개진
물살에 일그러진 그림자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