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감상

[스크랩] 사근사근 첫눈이 / 이화은

오선민 2015. 12. 1. 10:26

사근사근 첫눈이 / 이화은 




눈이 온다 서울 여자처럼

사근사근사근사근

큰오빠를 홀린 서울 여자를

집안 어른들은 여시라고 했다

치마 속에 꼬리를 감추었다고 했다

발자국이 없을 거라고 했다

사근사근사근사근

서울말은 우리들 눈썹에 머리칼에

손등에 닿자마자 솜사탕처럼 녹아내렸다

우리는 침을 흘리며

그녀의 입만 쳐다보았다

그녀가 울면서 떠나간 날도 눈이 내렸다

면사무소 국기게양대처럼 꿋꿋하던 큰오빠가

시든 열무 잎처럼 변한 것도

그 여시 때문이라고

눈이 온다

흰 속치마 속에 아홉 개의 꼬리를 감추고

무덤덤 담벼락에 전봇대에

오래 눈을 감고 있는 늦은 골목에

발자국도 없이

사근사근사근사근

 

 

 

 

                          《시인수첩》 2012년 봄호

 

 

출처 : 원주문학
글쓴이 : 윤종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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