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이사 본문
# 이사
1톤 트럭에 조그마한 장롱 싣고 자질구레한 짐 보따리 대충 꾸려서 바람에 보자기 끈 휘날리며 먼지 나는 지방의 도시로 참 많이도 이사를 다녔었다. 짐도 없으니 이삿짐 꾸리는 것은 반나절이면 끝이 나고 딱히 이사라고 할 것도 없이 그저 이리 저리 많이 떠돌던 기억이 난다.
결혼 후 여덟 번인지 아홉 번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주민등록등본을 떼어보면 도대체 지저분해서 볼 수가 없었다. 지금은 전산 시스템으로 많이 깔끔해 졌지만 예전에는 이사하는 곳 마다 등본에 기록을 하다 보니 정말 더 이상 쓸 곳이 없을 정도였다.
이십사 년이 지난 지금...... 또 다시 이사를 한다.
다시는 이사 안하고 싶다고 집을 사서 온 것인데 이사를 하게 되었다.
# 집
조금은 외딴 곳, 사람들의 발길이 뜸 한 곳에 아담하게 이층집을 지어 텃밭을 가꾸고 화단을 만들어 화초를 가꾸며 살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다. 이층의 방에는 유리창을 크게 만들어서 밖이 훤히 내다 보였으면 더 좋겠고. 이왕이면 내 서재를 만들어 잔잔한 음악 들으며 커피도 마시고 친구들 초대해서 그 곳에서 담소도 나누고 그렇게 살고 싶다.
웬만한 부식거리는 텃밭에서 해결하고 사시사철 야생화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모습 보며
비가 오면 빗물 창가 두드리는 소리 듣고 싶고, 눈이 오면 나뭇가지에 눈 쌓이는 모습 보면서 정말 그런 집에서 살고 싶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 할지 모르겠다. 꿈같은 소리라고. 허황된 꿈을 꾼다고. 하지만 난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니다. 난 이런 생각을 십대에도 했었고, 이십대에도 했었고, 삼십대에도 사십대에도 했었다.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내가 그리도 꿈꾸었던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절망감에 사로잡혀 모든 것이 헛되게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꿈이란 내가 꾸는 것이고 내가 이루고자 하면 언젠가는 이뤄지게 마련이다. 단지 시간이 좀 늦을 뿐이고 다른 사람과 다른 길을 갈 뿐이다.
직선으로 가는 사람과 곡선으로 가는 사람은 시간 차이가 분명히 난다. 난 지금 직선이 아닌 길을 돌아서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 인생
인생이란 무엇일까 많은 생각을 하곤 한다. 내가 이 세상에 와서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후회 없이 살다가 가야 할 텐데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인지 도무지 모를 때 가 있다.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부자로 권력과 부를 가지고 태어나고 어떤 이는 평생을 지지리 고생만 하다가는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누구나 잘 살고 싶고 이름을 떨치고 싶으리라. 하지만 도무지 내 뜻과 생각대로 되는 것이 없는 세상이다. 어쩌면 우리들 모두는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 내 자신이 연출자이며, 배우이며 감독일지 모른다. 실패와 성공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부인 할 수 없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사실은 수많은 번뇌와 고민에 빠진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 아무도 모른다. 이렇게 사는 사람 저렇게 사는 사람, 나름대로 다 자기들이 살아가는 방편이므로 그 누구도 그를 탓하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 우리를 향해 행복하시냐고 묻는다면 나도 물어 보고 싶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느냐고.
내 인생이니 내 맘대로 살겠다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고 오만이다.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므로 내 맘대로 살아지는 인생이 아니란 말이다.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살아 내야만 하는 삶이므로 책임을 져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혹 누구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인생 뭐 있어. 대충 사는 거지.” 이 말에 나는 고개가 갸우뚱 거려진다. 정말 그럴까? 인생에 뭐가 있을까? 대충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또 다시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럼 나는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왔을까? 대충 살다 갈 거라면 굳이 힘들게 살 필요가 있을까? 만약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상상하기조차 싫어지는 순간이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그렇게 세상을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온통 악으로 가득 찰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죽이고. 죄의식 따위는 가지지도 않을 것이다.
한 번 왔다가는 이 세상. 내가 죽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세상. 그 먼 곳이 얼마나 좋은 곳이기에 한번 가면 그 누구도 다시는 이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곳에 우리들도 가야한다. 모르는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에 두렵다. 인간은 미완성의 존재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 하고 매달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 종교를 갖는지 모르겠다.
# 시행착오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장 하는가 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난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가. 완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보니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으나 부끄럽다. 굳이 내 자신을 반성 하자면 잘 한 것보다 잘 못한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항상 반성하고 다시 결심하고 하지만 또 다시 반성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본다. 인생의 절반을 살아 왔으니 아직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찌 보면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든다. 왜냐면 시간은 반비례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시간에 가속이 붙는 것 일까? 지나면 지날수록 더 빠르게 느껴지니 말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듯이 우리 인생은 배움의 연속인가보다. 그래서 끝이 없을지 모른다. 가는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 하리라 생각한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인생이니까. 내가 살아내야 하는 내 것이니까. 오늘도 또 시행착오를 겪으며 쓴 맛도 보고 단 맛도 볼 것이다. 어쩌면 이게 인생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