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사월에 걸려온 전화 / 정일근 본문

좋은 시 감상

사월에 걸려온 전화 / 정일근

오선민 2011. 4. 14. 00:24

사월에 걸려온 전화 / 정일근


사춘기 시절 등교길에서 만나 서로 얼굴 붉히던 고 계집애
예년에 비해 일찍 벚꽃이 피었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일찍 핀 벚꽃처럼 저도 일찍 혼자가 되어
우리가 좋아했던 나이쯤 되는 아들아이와 살고 있는,
아내 앞에서도 내 팔짱을 끼며, 우리는 친구지
사랑은 없고 우정만 남은 친구지, 깔깔 웃던 여자 친구가
꽃이 좋으니 한 번 다녀가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한때의 화끈거리던 낯붉힘도 말갛게 지워지고
첫사랑의 두근거리던 시간도 사라지고
그녀나 나나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우리 생에 사월 꽃잔치 몇 번이나 남았을까 헤아려보다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

그 눈물 감추려고 괜히 바쁘다며
꽃은 질 때가 아름다우니 그때 가겠다, 말했지만
친구는 너 울지, 너 울지 하면서 놀리다 저도 울고 말았습니다.

 

'좋은 시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짓말 / 문정희  (0) 2011.04.30
뉴 타운 / 이수익  (0) 2011.04.14
립스틱의 발달사   (0) 2011.03.23
장작 패는 법 / 복효근  (0) 2011.03.22
안개꽃/홍해리  (0) 2011.03.18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