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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감상

또랑길 / 이병초

오선민 2011. 8. 5. 15:53

또랑길

 

   이병초

 

 

 

동진강 가는 또랑길

보릿대 태우는 냇내가 무덥다

내 손바닥 잔금들이

소쿠리 바닥 찍어놓은 것 같다고

쫑알대는 지지배를 따라왔던 길,

논고랑에 튀는 가물치를

삽날로 찍어냈다는 말에

갯버들 속에 물떼새들이 푸드덕

날아오르던 길, 아이 깜짝야, 니가 시켰지

너 이담에 뭐 될라고 그러냐?

내 겨드랑이 깊숙이 박힌 날갯죽지를

지지배는 다짜고짜 끄집어내려 들었고

노을 깔리는 강둑길에 지지배를 업고

갯내 짠내 뒤엉킨 뻘밭 속에

나는 푹푹 빠지고만 싶었다

와리바시로 쌈장을 찍어 바람벽에 써 보던 이름

동진강 둑길에 깔리던 달짝 같았던 시간을

나는 자살처럼 아꼈다

너 이담에 뭐 될라고 그러냐 쫑알대는 목소리가

동진강 가는 무더운 또랑길에

풀잎처럼 자꾸만 둥글게 휘어진다

 

 

 

                            —《현대시학》2011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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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 1963년 전북 전주 출생. 1998년 《시안》에 연작시 「황방산의 달」로 등단. 우석대 국문과와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수학. 시집 『밤비』『살구꽃 피고』. 현재 웅지세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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