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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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시인/ 노향림
‘나무의 수사학’을 펴낸 손택수 시인이
한국시인협회가 주는 젊은 시인상을 받을 때
밝힌 수상 소감이다.
시집이 나오고 일주일 동안 책이 하도 잘 나가서
베스트셀러 시인이 되는 꿈을 꾸었단다.
알고 보니 그것은 순전히 가짜였다고,
어머니가 아들 자랑을 하고 싶어 한 권 한 권
사다가 쌀독 속에 쌓아 두었던 것.
가끔 노친네 친구들에게 팔기도 했다는데
시집 외상, 5000원
시집 외상, 8000원
어머니 글씨가 선명했고 시인이 시인 자신의 시집을
사는 것 같아 얼굴을 화끈 붉혔다 한다.
그 뒤 한 달을 기다렸다가 서점에 들러 보니
딱 한 권 팔렸다고.
그 말을 들은 시인은 처음엔 실망했지만
그 한 권을 사간 사람은 혹시 시인일지 모른다고
그 한 권을 산 독자를 위해 계속 쓰겠노라 했다.
시인은 시밖에 몰라서 늘 목말라해도
투명한 영혼의 젖줄은 계속 풀어내야 한다고.
독자 한 사람의 가슴을 울리기 위해 쓰는
오, 진정한 베스트셀러 시인.
- 격월간『유심』2011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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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유일하게 세계 베스트셀러 100위에 이름을 올린 책은 홍성대의 ‘수학의 정석’이다. 지금까지 4천만 권 이상 팔렸고 지금도 팔려나가는 스테디셀러이다. ‘시의 시대’였던 80년대 한때 수백 만부가 팔렸다는 시집들은 ‘잽’도 안 된다. 이후에도 고만고만한 베스트셀러 반열의 시집이 있었지만 대개는 낯간지러운 연애편지 모음집 같은 것이었다. 작품성은 논외로 치더라도 그 내막을 알면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다.
언젠가 TV시사프로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파헤쳐 보여준 바 있지만, 출판사의 치졸한 편법 사재기가 역시 주된 원인이었다. 몇몇 주요 서점만 집중공략해도 주간단위로 평가되는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에 바로 진입할 수 있는데, 더구나 시집의 경우는 진입장벽이 낮아 이딴 식이면 베스트셀러 되는 건 일도 아니다. 결국 저급한 마케팅에 독자들만 휘둘리는 왜곡현상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얘기다. 최근 황석영 작가도 밝혔듯이 사재기가 도를 넘어 나날이 진화하고 있으며, 대행업체까지 버젖이 운영되고 있다니 참으로 부끄러운 현실이다.
시가 여름철 매미소리만큼이나 흔하고 시집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도 시의 시대는 종쳤다는 자조 섞인 탄식이 들린다. 그 현실의 한 모서리에는 정통 문학의 범주에선 쳐주지 않는 시집이 출판사의 과도한 마케팅 결과이건 어쨌건 간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양상으로 독자의 입맛을 자극해 시집 부문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이는 시의 몰락의 결과이기도 하고 거꾸로 시의 몰락을 더욱 재촉하는 조짐이기도 하지만 문화 일반의 저급화현상이라고 본다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이런 환경에서 손택수 시인의 어머니께서 써먹은 마케팅 전략은 참으로 유효한 감동이며 희망적이기까지 하다. 또 시인은 어떤가. 한 달간 서점에서 딱 한권 팔린 그 시집을 사간 독자를 위해 ‘계속 쓰겠노라’ 다짐하지 않는가. 시집 한 권은 불과 스타벅스에서 마시는 차 한 잔 값이다. 그 한잔 값이면 한 시인의 ‘투명한 영혼의 젖줄’을 통째로 사는 셈이고, 그 시인은 독자의 고양된 정신을 수호해갈 ‘진정한 베스트셀러 시인’이 되는 것이다.
권순진
This Little Bird- Marianne Faithf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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