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을 나와서 진도읍에 있는 실내체육관으로 갔습니다.
대부분의 피해자 가족들이 거기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도 많은 피해자 가족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학부모는 사고가 난지 벌서 이틀이 지났는데 정부는 왜 대책회의만 하냐고, 도대체 구조는 언제 할거냐면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제가 체육관에 도착하니 그때도 정부 관계자들은 대책회의를 한다면서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학부모들끼리 서로 언성을 높이면서 싸우기도 하고, 한쪽에서는 대통령을 욕하고, 정부를 욕하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습니다.
정부는 500명의 구조요원들을 현장에 투입해서 열심히 구조 활동을 하고 있다며 가족들을 안심시키려 했다가 아주 혼쭐이 났습니다. 그런 새빨간 거짓말을 아직도 하냐고. 그렇다면 왜 아직까지 한 명도 구조해 내지 못하냐고.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온갖 유언비어가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특수부대원들이 이미 선내로 진입했는데 거기에는 수많은 시신들이 둥둥 떠 있었다. 그런데 피해자 가족들의 반발이 무서워서 아직 밖으로 꺼내지 못할 뿐이라는 얘기도 한쪽에서는 하고 있었습니다.
일부 피해자 가족은 “왜 지금까지 탑승자 명단도 발표하지 못하느냐? 그래가지고 느그들이 국민을 지키는 정부냐? 배가 좌조하고 나서 이틀이 지나도록 느그들이 한 것이 뭐냐?”면서 고함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듣고 있자니 속에서 불덩이가 올라왔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체육관 밖으로 나왔습니다. 밖에는 굵은 비가 내리고 있는 체육관 밖에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수고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곳에서 우연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후배를 만났습니다.
“이곳 분위기 좀 어때?”
“형님! 한 마디로 개판입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와도 누가 통솔하거나 정리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각자 알아서 적당한 곳에 텐트를 치고 각자 알아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경우가 어디 있답니까?”
우리는 지금 이런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좌초된 배가 뻔히 눈앞에 보이는데 300여명의 금쪽같은 어린 생명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 어디 말이나 되는 얘기입니까? 열심히는 했을 것이고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이게 말이나 되는 얘기입니까?
배가 최초에 좌초될 당시에도 군과 해경은 인근에서 탑승객들을 구조하기 위해 몰려든 민간인배에 대해 접근금지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민간인은 그것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바다에 이미 뛰어든 사람들의 구조는 우리에게 맡기고 군과 해경은 배안에 갇혀있던 사람들을 구조하는데 주력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생명을 구했을거라고.
무슨 이런 경우가 어디에 있답니까? 질서도 없고, 체계도 없고, 대책도 없고, 누가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위에 있는 사람 눈치나 살피고, 울부짖는 피해자 가족들 어루만지는 사람도 없고…….
이 나라가 대한민국 맞지요? 왜 정부는 자꾸만 국민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국민이 정부가 하는 말을 믿을 수 없다면 이 나라가 과연 제대로 지탱이 되겠습니까?
하긴, 움직이면 더 위험하니 방에 꼼짝하지 말라는 어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아이들은 지금 모두가 물속에 잠겨있고, 그 말을 믿지 않고 밖으로 나온 사람은 살아남는 세상이니 더 이상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아이들은 놔두고 제일 먼저 도망 나온 그 짐승 같은 선장 때문에 말입니다.
“물이 고여, 물이…” 한 여학생의 외마디 비명. 카톡으로 “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 놓는다. 사랑해”라고 고백했던 어느 남학생. 학교연극부의 카톡방에 “연극부 다들 사랑해. 우리 죽을 거 같아. 잘못한 것 있으면 용서해줘”라는 메시지를 남긴 학생.
어느 여학생은 기울어가는 여객선 안에서 “친구들과 뭉쳐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고 아버지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좌불안석의 아버지는 “가능하면 밖으로 나와라”고 답장을 했습니다. 그 여학생은 “지금 복도에 애들이 다 있고 배가 너무 기울어 나갈 수 없다”는 답장.
한 남학생은 “방안 기울기가 45도야. 데이터도 잘 안 터져. 근데 지금 막 해경 왔대”라고 오전 9시25분께 형에게 카톡을 보냈고, 형은 곧바로 “구조대가 금방 오니까 우왕좌왕 당황하지 말고 정신 차리고 하라는 대로만 해. 데이터 터지면 형한테 다시 연락해”라고 보냈지만 동생은 형의 메시지에 아직까지 대답이 없습니다.
“구조대가 왔으니 끊겠다.”는 통화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긴 여학생의 어머니는 진도 팽목항에서 구조 소식을 기다리면서 “바다가 이렇게 찬데…. 어떻게 살아요,”라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구조대가 도착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구조되지 못한 우리 아이들. 극한 두려움 속에서도 사랑의 메시지를 보낸 뒤에 지금까지 소식이 없는 우리의 어린 천사들이 오늘은 모두 살아서 돌아와 “엄마!”하고 “아빠!”하고 가족의 품에 꼭 안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동부매일 대표
박 완 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