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스크랩] 어스킨 니콜 - 아일랜드를 사랑했던 스코틀랜드 화가 본문
2015.08.13. 23:14
http://blog.naver.com/dkseon00/220450252805
1845년, 아일랜드에 감자병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감자를 주식으로 삼았던 아일랜드 사람들 중에 이 것이 그들에게 가장 끔직한 재해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처음부터 알았던 사람은
아마 없었겠지요. 3년 연속 감자 수확이 불가능해지면서 아일랜드 사람들 100만명이 굶어 죽습니다.
어떤 자료는 200만명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 100만명이 넘는 사람이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이민 길에 오르지만
그 나마 배에서 내려 새로운 땅에 도착한 사람은 40% 정도였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대재앙이었습니다.
당시 이런 아일랜드를 사랑했고 그들의 모든 것을 그림에 담은 화가가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화가 어스킨 니콜 (Erskine Nicol / 1825 ~ 1904) 입니다.
담배 피는 남자 A Man Smoking /20.9cm x 18.5cm / oil on millboard /1856
담뱃대에 불을 붙이고는 의자에 깊숙이 등을 기댔습니다. 팔짱을 끼고 다리도 꼬았습니다.
그래도 쉽게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자 아예 눈까지 감았습니다.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으신가요?
허물어진 담 너머로 파란 하늘이 보이는데 담을 타고 내려 온 담쟁이 넝쿨처럼 가슴 속 상념들이 얽히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배경 속 흰 벽처럼 머릿속이 하얗게 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것인가 아니면 문제를 잘라 버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늘 힘이 드는 일이지요.
니콜은 스코틀랜드 동남부 지역의 리스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주가 있었는지 집을 장식하는 화가의 견습생으로 들어가면서 미술과 만나게 됩니다.
열 두 살이 되던 해 에든버러에 있는 트러스티스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을 보면 도대체 몇 살부터 견습생 노릇을 했던 것일까요?
그러나 그의 부모는 그가 화가가 되는 것을 아주 심하게 반대했습니다.
사정없이 값을 후려치기 Driving a Hard Bargain / 45.7cm x 61.4cm / oil on canvas / 1860
자, 이거면 되겠지요?
모자를 쓴 사내가 손 바닥에 올려 놓은 동전을 펴 보였습니다.
물건을 팔러 나온 사내와 그의 어머니처럼 보이는 여인의 표정이 흥미롭습니다. 담배를 물고 있는 사내는 기가 막혀 하는 표정이고
노파는 이 사내가 제 정신인가 하는 듯 모자를 쓴 사내를 올려다 보고 있습니다.
흥정은 서로가 손해 보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흥정이 재미있는 것인데 그 범위를 넘어서면 바가지를 쓰거나
물건을 약탈하는 것과 같습니다.
모자를 쓴 남자, 제 기준에 의하면 별로 입니다.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술공부를 시작한 니콜은 역사화가였던 윌리엄 앨런과 토마스 던칸의 지도를 받게 됩니다.
스물 한 살이 되던 해 니콜은 잠깐, 고향인 리스에서 미술교사로 활동하다가 아일랜드의 더블린으로 자리를 옮겨 미술교사로 일을
하게 됩니다. 이 해가 1845년으로 아일랜드의 감자 대기근이 시작된 해였습니다.
아침 잔소리 A Morning Lecture / 49.5cm x 33.5cm / oil on canvas / 1863
아버지와 아들처럼 보이는데 분위기가 냉랭합니다.
아침부터 잔소리를 하는 아버지나 혼이 나고 있는 아들이나 기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모습도 서 있는 모습도 닮았습니다. 부자지간 아니랄까 봐 찌푸리고 있는 표정도 닮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런 잔소리가 바르게 크는 영양소 중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늘 아쉬워하는 ‘밥상머리 교육의 실종’이 우리 사회를 어렵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아침 밥상에서 아버님의 꾸지람을 듣던 저도
그렇게 제 아이에게 하고 싶었는데 아침을 같이 먹을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꼬마에게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주머니에서 손 빼고 똑바로 서서 말씀을 들어야지!
더블린에서 미술교사로 사는 것이 힘들었던지 니콜은 모자란 생활비를 위해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곳에 머무는 동안 아일랜드 사람들의 풍속과 풍경 그리고 소위 ‘아일랜드 촌뜨기’들의 유쾌한 모습을 주로 담았는데
작품 속에는 천연덕스러운 그들의 유머가 담겼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유쾌한 내용의 작품만을 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생각을 모으는 중입니다 Collecting His Thoughts / 35cm x 47.1cm / oil on canvas / 1865
아, 그 때 그 것이 무엇이었더라 ----
지나간 일들을 정리하다가 그 것들 중에 하나가 도대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턱을 괴고 창 밖을 보면서 그 때 기억을 떠 올려보려고 하지만 나타날 듯 하면서 기억은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그 기분, 저도 알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기억력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내의 기억력에 의존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나마 기억이 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아주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듯 합니다.
떠오르지 않는 기억은 그냥 놔두면 어떨까요?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만 기억한다면 그 것으로 충분합니다.
아일랜드 대기근은 기본적으로 감자병에 의한 것이지만 사람이 굶어 죽었던 것은 영국의 무관심과 착취 그리고 올바르지 못한 사회의
시스템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기록들을 보면 지금도 아일랜드 사람들이 영국 사람에 대한 증오를 지우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니콜은 이런 참상과 불합리한 체제를 그림에 담은, 몇 안 되는 화가 중 한 명이었습니다.
새 임대 계약 맺기 Signing the New Lease / 122cm x 93.4cm / oil on canvas / 1868
여기에다 서명을 하면 되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새롭게 임대 계약서를 작성하고 서명을 앞 둔 남자가 다시 한 번 확인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상상이 가능한 장면입니다.
사방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책과 책장을 보면 펜을 들고 있는 남자는 가난한 작가처럼 보입니다.
테이블 옆에 서 있는 남자는 집 주인이거나 중개인처럼 보이는데 중개인에 무게를 두고 싶습니다.
집 주인이라면 저렇게 세워 놓을 것 같지는 않거든요.
오른쪽 책장 앞에서 이 모습을 내려다 보는 남자는 --- 가난한 작가에게 얹혀 사는 친구? 힐끔거리는 모습이 불안해 보이거든요.
그나저나 집 안 정리를 좀 해야겠습니다.
1850년, 고향인 스코틀랜드로 돌아 온 니콜은 로열 스코틀랜드 아카데미에 작품 6점을 전시합니다.
그리고 다음 해 로열 스코틀랜드 아카데미의 준회원이 됩니다. 또 이 해에 자넷이라는 여인과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자넷은 12년 뒤, 세상을 떠납니다. 둘 사이에는 1남 1녀를 두었는데 나중에 아들은 화가가 됩니다.
니콜은 아내가 죽고 2년 뒤, 마가렛이라는 여인과 두 번째 결혼을 하고 2남 1녀를 낳습니다.
아들 중 한 명이 훗날 화가가 되니까 니콜은 화가 아들만 둘을 둔 셈입니다. 니콜의 화가로서의 유전자 힘은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추위를 대비한 한 잔 A Nip Against the Cold / 50.8cm x 63.5cm / oil on canvas / mounted on board /1869
일을 하러 나갈 준비를 끝낸 사내는 마지막으로 작은 병에 위스키를 담고 있습니다.
아무리 옷을 두껍게 껴 입는다고 해도 겨울의 바람은 옷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마침내는 몸을 얼게 만듭니다.
일을 할 때는 모르지만 잠시라도 쉬면 그 추위는 더 강해지곤 했지요. 그럴 때는 속을 데우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간단하게 몸을 덥히는 데는 독한 술 한 잔이 최고입니다. 노동을 통해서 굵어진 손마디가 눈에 들어 옵니다.
베르메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과 구도가 비슷해서 모든 시선이 그 손에 이끌리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한 잔 치고는 병이 너무 크군요. 오늘도 별 일 없기를!
스코틀랜드로 돌아 왔을 때 니콜은 뛰어난 작품 완성도와 살아 있는 듯한 색상 그리고 일상을 주제로 한 작품들로 비평가들 사이에서
이미 호평을 받았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1859년, 로열 스코틀랜드 아카데미 정회원이 된 니콜은 3년 뒤, 런던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그리고 로열 아카데미에 작품을 전시합니다.
토요일 저녁 Saturday Night / 19.7cm x 27.6cm / oil on panel /1876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장면입니다. 토요일 저녁, 느긋하게 앉아 책을 읽고 있는 할아버지의 표정이 더 없이 부드럽습니다.
옷은 낡고 험하지만 분위기는 세상 그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습니다.
지친 몸과 마음이 쉬어야 하는 주말 저녁을 제대로 보내고 있는 것이지요.
나이 들면 저도 그림 속 노인의 모습처럼 되었으면 좋겠는데, 요즘 우리 사는 세상은 주말 저녁도 사람을 그냥 놔 두는 법이 없습니다.
몇 년 뒤, 니콜이 로열 아카데미의 준회원이 된 것을 보면 런던에서의 생활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프랑스에서 열린 전시회에서도 성공을 거두었고 1867년에 개최된 만국박람회에서는 2등 메달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런던에서 화가로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동안에도 니콜은 매년 주기적으로 아일랜드를 찾았습니다.
정말 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람들을 좋아했던 화가였습니다.
잃어버린 배 The Missing Boat / 51cm x 75cm / oil on canvas / 1877
폭풍우가 세상을 부숴버릴 것처럼 몰아치고 있는데 사람들이 부둣가로 나왔습니다.
초초한 표정의 그들이 바라보는 곳은 자신들의 배를 묶어 놓은 곳입니다. 서 있는 곳까지 바닷물이 밀려 들고 있지만 더 큰 걱정은
그들의 생계가 달린 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디에 있을까 – 이 곳 저 곳을 가리키는 아빠의 모습에 꼬마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보는 제 마음도 안타깝습니다.
살면서 만나는 파도, 피할 수 는 없었지만 파도가 지나간 다음에 다시 일어 설 수는 있었습니다.
1885년, 예순이 된 니콜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니콜은 로열 아카데미를 은퇴하고 고향인 스코틀랜드로 돌아갑니다.
그 이후의 행적에 대해 자세하게 나와 있는 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스코틀랜드에서 다시 런던 외곽 지역인 펠텀으로 거처를 옮겼고 그 곳에서 니콜은 일흔 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의심스러운 6펜스짜리 동전 A Doubtful Sixpence
지갑을 열고 다시 동전을 깨물어 보았습니다.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눈까지 살며시 감았습니다.
오랜만에 맡아 보는 동전 냄새였던 모양입니다. 하늘은 푸르른데 옆에 우산을 끼고 있는 것을 보면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됩니다.
어쩌다 만난 행운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는데 --- 그렇다고 얻는 동전마다 깨물다 보면 이가 남아 날 수 있을까요?
니콜이 세상을 떠난 다음 해. 로열 스코틀랜드 아카데미는 그에 대한 기념 전시회를 개최합니다.
고향 출신 화가에 대한 예우일 수도 있겠지만 아일랜드를 진정으로 사랑했고 대기근의 참상을 그림에 담아 낸
그의 대한 고마움일 수도 있습니다.
그가 어떤 성격의 소유자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한 명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림은 화가의 성격을 담고 있으니까요.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마는 아일랜드의 대기근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생각이 많아집니다.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거리에 쌓여 가는데도 추수한 밀을 영국으로 실어 날랐던 당시의 영국 귀족들, 구호품이 항구에 도착했지만
분배 시스템이 없어서 식량이 썩어 갔던 사회 구조들, 지금 우리 사회는 적어도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지 늘 궁금합니다.
[출처] 어스킨 니콜 - 아일랜드를 사랑했던 스코틀랜드 화가|작성자 레스까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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