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불가마에서 두 시간 (외 1편) / 권혁웅 본문
불가마에서 두 시간 (외 1편)
권혁웅
누가 이 양떼들을 연옥불에 던져 넣었나
수건을 돌돌 말아 머리에 인 어린 양과
불가마 속에서도 코를 고는 늙은 양들로 여기는 만원이다
올 가을에는 기어코 성지순례를 가겠다고
삼년 째 돈을 붓는 아마곗돈 회원들,
종말을 팥빙수와 바꾸고 나자 어린아이 머리통 같은
구운 계란이 굴러 온다
천국에서도 남녀칠세는 부동석이어서
파란 수건은 왼쪽, 빨간 수건은 오른쪽이다
당신 옆의 빨간 수건이 사라졌다면
그게 휴거다, 그는 당신이 갈 수 없는 곳으로
어쩌면 펄펄 끓는 화마지옥으로
아니라면 게르마늄 천국으로 갔다
아, 두고 온 사람을 돌아보느라
소금기둥이 된 이들로 이루어진 소금동굴도 있다
바짝 마른 양피지들이 바이오세라믹 공정을 거쳐
기신기신 기어나온다
미역국처럼 몸을 푼 이들, 조물조물
몸을 빤 이들, 배를 두드리며 제자리에서 뛰며
냉온을, 말하자면 겨울과 여름을
교대로 겪는 이들로 여기는 만원이다
그들이 벗어둔 양털이
기와로 벗겨낸 피부처럼 땟국물을 이루어 흘러간다
한 세상 떠돌던 꿈처럼
행불자가 되고 싶었던 생시처럼
옆 마을 어딘가에는 무릉이 있을 것이다
금영노래방에서 두 시간
너의 박수가 후렴 너머를 향해 있다는 건
진즉에 알았다
나의 18번을 네가 먼저 부를 때
나는 탬버린처럼 소심해져서 바닷바람을 맞는
화면 속 여자나 쳐다보는 것이다
사무실 의자가 멈춰 서서 두리번거리는 두발짐승이라면
여기 놓인 소파의 기원은 파충류여서
언제 내 손을 물고 첨벙대는 무대로 끌고 갈지 모른다
그렇다면 부장 앞에서
피처링을 하겠다고 달려드는 저 사원들은
악어새가 아니면 새끼 악어들,
내 예약곡 다음에 우선예약을 누르는 악다구니들,
너는 취해서 잘못 누른
옛 애인의 번호처럼 옆방에 들러 한 곡 부르고 온다
네 이웃의 마이크를 탐하다니
남의 손가락 사이에 타액과 DNA를 묻히고 오다니
나는 미러볼처럼 어리둥절해져서
세 번째 10분추가 안내문을 멀뚱히 쳐다본다
그제 부른 노래를 또 부르는 너
와우, 어디서 좀 놀았군요, 감상문이 가리키는 곳이
바로 여기였음을 너는 모른다
나는 WHITE를 마시던 손가락으로
간주점프를 눌러 몰래 복수나 하는 것이다
—《시와세계》201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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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 1967년 충북 충주에서 출생. 고려대 국문과와 동대학원 졸업.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등단, 1997년 《문예중앙》으로 시 등단. 시집 『황금나무 아래서』 『마징가 계보학』『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소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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