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함민복의 시로 여는 아침] 철길 / 김정환 본문

좋은 시 감상

[함민복의 시로 여는 아침] 철길 / 김정환

오선민 2011. 6. 3. 08:51

 

      철길  

 

 

                                 김정환

 

 

 

철길이 철길인 것은

만날 수 없음이

당장은, 이리도 끈질기다는 뜻이다.

단단한 무쇳 덩어리가 이만큼 견뎌오도록

비는 항상 촉촉히 내려

철길의 들끓어 오름을 적셔 주었다.

무너져 내리지 못하고

철길이 철길로 버텨온 것은

그 위를 밟고 지나간 사람들의

희망이, 그만큼 어깨를 짓누르는

답답한 것이었다는 뜻이다.

철길이 나서, 사람들이 어디론가 찾아 나서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내리깔려진 버팀목으로, 양편으로 갈라져

남해안까지, 휴전선까지 달려가는 철길은

다시 끼리끼리 갈라져

한강교를 건너면서

인천 방면으로, 그리고 수원 방면으로 떠난다.

아직 플랫포옴에 머문 내 발길 앞에서

철길은 희망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끈질기고, 길고

거무튀튀하다.

철길이 철길인 것은

길고 긴 먼 날 후 어드메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우리가 아직 내팽개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길이 이토록 머나먼 것은

그 이전의, 떠남이

그토록 절실했다는 뜻이다.

만남은 길보다 먼저 준비되고 있었다.

아직 떠나지 못한 내 발목에까지 다가와

어느새 철길은

가슴에 여러 갈래의 채찍 자국이 된다.

무슨 등호(=)가 이리 긴가. 무엇이 이리 같다는 강조인가. 살을 버리고 뼈로만 된 길, 철길이여! 시작과 끝이 같다는 것이냐. 이곳과 저곳이 더 큰 시각으로 보면 한곳이라는 뜻이냐. 네 위를 달리는 인생들이 같다는 것이냐. 구르지 않으려는 직선의 고집 레일이 있어, 멈추지 않겠다는 원형의 다짐 바퀴는 구른다. 레일은 쇳가루를 튕기며 빛나고 자갈들은 녹물을 뒤집어쓰며 기적소리 따라 세월을 운다. 철길, 너는 철처럼 강한 길이냐?

당장은 만날 수 없어도 어드메쯤에서는 만날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어 '철길은 철길'이라고 시인은 노래하네요. 또 '떠남이 그토록 절실했'기에 만날 날은 멀지만, '만남은 길보다 먼저 준비되고 있었다'고 희망가를 들려주네요.

이 시를 읽으며, 편협한 사고인지 모르지만 우리 민족의 분단 문제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철길 채찍을 맞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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