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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서 좋은 지금 (외 2편) / 박소유 본문

좋은 시 감상

어두워서 좋은 지금 (외 2편) / 박소유

오선민 2011. 7. 2. 19:21

어두워서 좋은 지금 (외 2편)

 

   박소유

 

 

 

처음 엄마라고 불렸을 때

뒤꿈치를 물린 것같이 섬뜩했다

말갛고 말랑한 것이 평생 나를 따라온다고 생각하니

어디든 도망가고 싶었다

너무 뜨거워서

이리 들었다 저리 놓았다 어쩔 줄 모르다가

나도 모르게 들쳐 업었을 거다

 

아이는 잘도 자라고 세월은 속절없다

낯가림도 없이 한 몸이라고 생각한 건 분명

내 잘못이다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는 말이 복음이었나

앞만 보고 가면

뒤는 저절로 따라오는 지난날인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깜깜 무소식이다

 

그믐이다

어둠은 처음부터 나의 것

바깥으로 휘두르던 손을 더듬더듬, 안으로

거두어들였을 때 내가 없어졌다

어둠의 배역이

온전히 달 하나를 키워내는 것, 그것뿐이라면

그래도 좋은가, 지금

 

 

 

오, 어쩌면 좋아

 

 

 

뼈만 남은 사연이 함께 굴러갈 동안

바퀴 따라가는 생은 모두 급하네

벼락같은 속도를 얻었으니

저게 모두 발자국이라면 내 발자국도 흔적 없을 터

차라리 눈발이거나 서릿발같이

가볍거나 아득했으면 좋겠네

 

구부러진 노인이 오그라든 유모차를 밀며 가네

서둘러 당도할 곳이 있기나 한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요란한 발걸음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데

가만 보니 소리만 있고 동작이 없네

고비마다 손발 떼어주고 오장육부 다 내주고

어느 밤중 깜박 잠들어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르고

둘, 둘, 굴러 집 찾아가는 엄마들

똑같은 표정, 똑같은 모습으로 지나가네

 

어쩌면 좋아, 아무렇지 않게 내가 멀어지네

내가 던진 감탄사를 꽃이 알지 못하듯

가볍고 아득한 이 온기를 알려나 몰라

어둠은 지나간 모든 것들의 그림자,

지나가는 슬픔인 줄 알았는데 내 것인가?

오, 오, 오, 오, 둥글게 굴러가네

 

 

 

울음

 

 

 

단숨에 밤하늘을 두 쪽 내고 튀어 오르는 울음이 있다

누워있던 골목까지 다 따라 솟구친다

몸속에 날선 칼이 있어야만 저렇게 울 수 있을게다

저 울음이 자유로울 동안 모두들 숨죽이고 있어야 한다

어둠도 목덜미 물린 채 꼼짝 못하고

자지러지게 울던 아이도 새파랗게 울던 삐삐주전자도

시도 때도 없이 울던 알람시계도 소리 내지 못한다

울어라 울어 실컷 울어, 고양이만 우는 게 아니다

너도 울고 나도 울지만

한 번도 곁을 주지 않는 울음에는 평생 주인이 없다

 

 

              

                          —시집『어두워서 좋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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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유 / 1961년 서울 출생. 198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0년 《현대시학》 으로 등단. 시집『어두워서 좋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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