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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안도현 본문

좋은 시 감상

일기 / 안도현

오선민 2011. 8. 25. 13:03

 

          일기

 

 

 

                                            안도현

 

 

 

 

 

 

오전에 깡마른 국화꽃 웃자란 눈썹을 가위로 잘랐다

오후에는 지난여름 마루 끝에 다녀간 사슴벌레에게 엽서를 써서 보내고

고장 난 감나무를 고쳐주러 온 의원(醫員)에게 감나무 그늘의 수리도 부탁하였다

추녀 끝으로 줄지어 스며드는 기러기 일흔세 마리까지 세다가 그만두었다

저녁이 부엌으로 사무치게 왔으나 불빛 죽이고 두어 가지 찬에다 밥을 먹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시인수첩》201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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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 1961년 경북 예천 출생.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모닥불』『그대에게 가고 싶다』『외롭고 높고 쓸쓸한』『 바닷가우체국』『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간절하게 참 철없이』. 현재 우석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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