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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감상

강 / 문정희

오선민 2011. 8. 25. 12:54

 

       강

 

 

 

                                문정희

 

 

 

 

 

 

 

 

 

어머니가 죽자 성욕이 살아났다

불쌍한 어머니! 울고 울고

태양 아래 섰다

태어난 날부터 나를 핥던 짐승의 혀가 사라진 자리

냉기가 오소소 자리 잡았다

 

 

드디어 딸을 벗어버렸다!

고려야 조선아 누대의 여자들아, 식민지들아

죄 없이 죄 많은 수인들아, 잘 가거라

신성을 넘어 독성처럼 질긴 거미줄에 얽혀

눈도 귀도 없이 늪에 사는 물귀신들아

끝없이 간섭하던 기도 속의

현모야, 양처야, 정숙아, 잘 가거라

자신을 통째로 죽인 희생을 채찍으로

우리를 제압하던 당신을 배반할 수 없어

물 밑에서 숨 쉬던 모반과 죄책감까지

브래지어 풀듯이 풀어버렸다

 

 

어머니 장례 날, 여자와 잠을 자고 해변을 걷는 사내*여

말하라. 이것이 햇살인가 허공인가

나는 허공의 자유, 먼지의 고독이다

불쌍한 어머니, 그녀가 죽자 성욕이 살아났다

나는 다시 어머니를 낳을 것이다

————

*알베르 까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

 

 

 

 

 

 

 

 

—《시인수첩》201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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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 1947년 전남 보성 출생. 1969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오라, 거짓 사랑아』『양귀비꽃 머리에 꽂고』『나는 문이다』『다산의 처녀』외. 시선집 『지금 장미를 따라』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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