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지금은 / 피에르 르베르디 본문
피에르 르베르디
삶은 단순하고 즐거워
밝은 해가 달콤한 소리내며 울리네
종소리가 가라 앉았네
오늘 아침 빛이 모든 것에 스며드는구나
내 머리는 불켜진 조명장치
그래서 내가 사는 방이 마침내 환해지네
한줄기 빛만으로 충분해
한번 터지는 웃음소리만으로
집을 뒤흔드는 나의 기쁨이
그 노래의 음으로
죽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붙드네
나는 곡조가 틀리게 노래부르누나
아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사방으로 열려진 나의 입이
어떻게 나오는지 나도 모르는
미친 가락들을 도처에 뿌리고
다른 귀들을 향해 날아가네
믿어주세요 나는 미치지 않았어요
나는 층계 아래에서
활짝 열린 문 앞에서
쏟아지는 햇살 속에
초록 포도밭 사이 담에서 웃고
내 두 팔은 당신을 향해 내밀어지네
바로 오늘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장마가 계속 되니 밝은 해가 빛나는 날들이 그리워집니다. 하루가 온통 단순하고 즐겁기만 하던 어린 시절엔 비가 아무리 와도 괜찮았지요. 노란 장화를 신고 물웅덩이만 골라 다니며 첨벙거렸잖아요. 그 시절엔 왜 동네 어느 집에 불이 나도 박수치며 좋아했잖아요.
그런 걸 보면 사랑에 빠진 사람은 행복한 유년기를 다시 사는 사람입니다. 빛은 빛대로 환하고. 물방울은 물방울대로 투명하고. 죽기로 맘먹은 사람을 붙들 수 있을 만큼의 신비한 달콤함을 자주 즐길 수 있으니까요. 하교 길에 사먹곤 했던 솜사탕처럼. 사랑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요? 그런 가여운 자들을 위해서 보들레르는 말했습니다. "건장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틀간 먹지 않고 지낼 수 있다. 그러나 시 없이는 절대로!" 비는 멈추지 않고 사랑은 시작될 기미도 없는 날들이라도 우린 충분히 버틸 수 있어요, 사랑의 시를 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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