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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창작강의 및 문학이론

<사진 속에 담긴 문인>

오선민 2013. 1. 22. 09:33

2007년 6월 5일 (화) 15:07 연합뉴스

<사진 속에 담긴 문인>





육명심 문인사진첩 '문인의 초상'

(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 "여기, 껄껄껄 홍소하는 사나이다운 그의 표정을 보라…마치 무협지 주인공인 협객이 수많은 적들에게 완전 포위된 위기 상황 속에서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오히려 두둑한 배짱으로 응수하는 그런 표정이다."(26쪽)

사진작가 육명심(74)씨는 1970년대 초반 고은 시인의 집을 찾아가 찍어놓았던 시인의 사진에 대해 이같이 해설한다.

당시 자신의 집을 찾은 작가에게 시인은 같은 33년생이라는 이유로 대뜸 말부터 놓으라고 '명령'했다. 작가가 얼떨결에 '야, 고은아!'하고 외치자 시인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작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육씨가 1970년을 전후해 현대 문인 71인을 직접 찾아가 찍은 인물 사진들을 한데 모은 문인사진첩 '문인의 초상'에는 고은 시인 외에도 김춘수, 박두진, 박목월, 서정주, 천상병, 구상 등 우리 현대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겨놓은 문인들의 인상적인 표정들이 가득하다.

'백민'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는 1970년 대 초반 문학ㆍ음악ㆍ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앵글에 담았다. 이번에 펴낸 책은 그중 문인 사진만을 추려내 그에 얽힌 일화를 곁들인 것이다.

작가가 앵글로 포착한 김춘수 시인의 인상은 고요함이다. "여든이 넘도록 영원한 현역 시인이었다"고 회고하는 작가는 난초를 앞에 두고 고즈넉한 자세로 명상에 잠겨있는 시인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박두진 시인에 대해서는 세상에서 가장 "비린내 나지 않는" 인물로 묘사한다. 당시 대한민국 예술원장이던 박종화씨가 예술원 회원으로 추대해주겠다는 것을 거절한 데 이어 문학 선생을 맡아달라는 육영수 여사의 요청마저 물리쳤던 유명한 일화도 소개했다.

원고 용지가 놓인 자그마한 탁자 위에 두 손으로 얼굴을 받치고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겨있는 시인. 사진 속 시인의 모습은 그야말로 '대쪽' 이미지다.

시인 박목월의 모습은 해학적이다. 헐렁헐렁한 러닝셔츠 차림에 개 두 마리를 데리고 마루에 앉아 너털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작가는 "새벽에 영롱하게 맺히는 이슬만 받아먹고" 살 것 같은 이 목가적 시인에 대해 "그 역시 한 아내의 남편이고 아홉 자식의 아버지이고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며 "그러한 이미지를 사진에 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1967년 이른바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돌아온 천상병 시인. 입을 굳게 다문 채 절망에 빠져있는 듯한 눈빛을 띤 모습을 사진에 담은 작가는 "이 사진을 똑똑히 보아라. 이렇게 폐인이 돼 망가진 모습을…. 누가 천상병 시인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았는가!"라며 비통에 잠기기도 한다.

이밖에 이불 위에 누워 가만히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서정주 시인의 속세를 초탈한 듯한 모습, 깊은 고뇌에 잠겨있는 구상 시인의 모습을 비롯해 강은교, 김남조, 김동리, 김상옥, 김후란, 양주동, 피천득 등 여러 문인들의 색다른 표정이 120여 컷의 사진을 통해 생생하게 담겨있다. 절반 가량은 이미 세상을 떠난 작가들이다.

작가는 머릿말에서 "처음에는 시인이면 시인, 소설가면 소설가로만 보였는데 해가 거듭되면서 문인들이 예술가이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예술가라는 옷을 벗어버린 원래 타고난 그대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고 말한다.

열음사. 296쪽. 2만원.

js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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