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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철학

영화 <파니 핑크>

오선민 2013. 4. 3. 16:29

제목부터 사람을 끌었던 영화 [파니핑크].

 

 

"Keiner liebt mich" 해석하면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정도가 되겠다. 오래된 영화지만 처음 만났던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이 영화는 변치않을 여성을 위한 '성장통' 영화다. 서른이건 그렇지 않건 세상의 모든 여자를 위한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기에 두고 두고 다시 봐도 언제나 애잔하고 사랑스러운 힐링 영화다.

싱글 레이디 '파니 핑크'

파니가 비디오 테잎에 찍히는 장면부터 영화가 시작된다. 결혼회사에서 사용될 자기소개 비디오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자신이 사랑받지 못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녀의 불안정한 눈빛, 손짓은 입으로는 내가 지금 어때서요, 하고 반문하지만 그녀의 진심 "저 외롭고 고독합니다. 마음이 뻥 뚫렸어요."를 고스란히 내비친다. "여자가 여자 나이 서른에 좋은 남자를 만나기란 길을 걷다 원자폭탄을 맞는 것보다 더 어렵다." 라는 말을 하며 시작되는 이 영화.

파니는 죽음을 두려워 않는다. 죽음을 매일 생각하고, 사랑받지 못하고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을 내다버릴 마음의 준비를 배우는데 몰두한다. 관을 만들고 죽음을 연습하는 그녀는 이제 '겨우' 서른살이다. 그녀에게 세상은 상종못할 곳이고 재미없고 부질없다. 오로지 음침한 그녀의 집과 관 속에서만 안락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파니 핑크에게 변화가 일어난다. 낡은 아파트에 새로 입주한 점성술가 흑인'오르페오'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사기꾼 같고 또 어찌보면 진짜 점성술사 같은 오르페오는 파니에게 곧 진짜 사랑이 찾아올 것이라는 예언을 해주고 여러 힌트를 알려주어 그녀가 삶에 포커스를 죽음이 아닌 사랑으로 돌릴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오르페오의 예언과 힌트에 맞는 남자가 정말로 아파트에 등장한다. 금발 미남의 새 관리인인데(이름은 기억이 안난다) 파니는 모처럼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다가가고 진짜 자신을 찾아온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까지 스토리로는 굉장히 유치한 멜로 같겠지만 영화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니 걱정 하지 않아도 좋다.

관리인은 파니의 친구와 바람이 나고, 파니의 순정은 갈갈이 찢기니 말이다. 오르페오는 그런 파니의 곁에서 친구이자 스승이자 가족이 되어 머물러 준다. 그녀가 진짜 사랑을 찾을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전에 자신부터 사랑하는 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위 사진은 그 유명한 파니 핑크의 서른 번째 생일날 오르페오가 해골 분장을 하고 '에디뜨 피아프'의 [Non, Je Ne Regrette Rien]을 립씽크로 부르는 장면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며 우리가 주목해야할 부분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오르페오'라는 캐릭터에 대한 고찰이다.

친구 오르페오로 인해 파니는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얻게 되지만 정작 영화 내내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오르페오 자신의 삶, 사랑 이야기다. 흑인이자 게이인 그는 인종차별과 성적 소수자 라는 약자의 위치에 존재한다. 누군가에게 멘토가 되어줄 수 있는 훌륭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오르페오 자신은 자신의 사랑을 용기있게 드러낼 수도 없고 요구할 수조차 없다. 게다가 남몰래 병으로 죽어가는 중이기까지 하다.

- 잔을 봐, 반이 찼어? 아니면 비었어?

- 반이 비었어.

- 봐, 넌 그게 문제야. 없는 것이나 불가능한 것, 잃어버린 것에 대한 불평,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마음. 넌 이미 많은 걸 가지고있잖아. 일, 가족, 좋은 피부색...그런데 대체 뭘 더 바래? 난 없어. 아무것도. 병에 걸렸고, 곧 죽을거야.

- 오르페오와 파니의 대사 中 -

결국 오르페오는 죽는다. 파니는 죽어가는 오르페오를 위해 그가 입고 싶어하던 아르마니 양복을 구해다 주고 자신의 관을 빌려준다. 헬리콥터 소리 우다다다다다, 하는 비행소음을 틀어주고 그가 영원한 안식을 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과정에서 파니와 오르페오 사이에 누구보다 두텁고 끈끈한 이해와 신뢰가 형성됨을 느낄 수 있는데 결국 이는 파니 스스로의 성장과도 맞물리는 부분이다.

오르페오와의 만남과 이별로 인해 파니는 자신이 놓치고 있던 삶의 행복과 잘못된 마음가짐들에 대해 깨닫게 된다. 아파트 이웃들과 소통을 시작하고 진정한 새 사랑 또한 시작된다. 파니는 용기를 내어 한 걸음 내딛는다. 자신이 만들었던 틀인 관을 밖으로 던져버리는 마지막 씬을 통해 더이상 혼자만의 방에 갇혀 우울이란 밧줄로 목 조르며 슬퍼하는 파니는 없을 거란 한 마디를 전한다.

이 세상에는 많은 파니 핑크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예쁘고, 젊고, 부유하고, 똑똑한 여성들이 자신의 조금 불만족스러운 것 하나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단지 그 하나에 절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이 정말 파니 핑크가 아닐까 싶어지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파니 핑크들 중 하나다. 부끄럽게도 사실이 그러하다. '_' 그나저나 음, 영화 속 게이친구는 언제나 사랑스럽다. [파니 핑크]도 그러하고 [섹스 엔 더 시티],[메종 드 히미코]도 그러하고.

여튼. 힐링이 필요한 날에 편안한 마음으로 만나면 좋을 매력적인 이 영화. 포스팅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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