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자기장을 읽다 / 길상호 본문
'좋은 시·아름다운 세상'『詩하늘』詩편지
자기장을 읽다
길상호
밟혀도 꿈틀, 움직일 수 없다
마른 흙바닥 위에
지렁이는 죽고 말았다
자성 강한 죽음이
반대 극의 식욕을 불러들인다
쇳가루처럼 시커멓게
달라붙은 개미 떼
자기장이 참 길기도 하다
식은 국밥 대신
제 몸 한 조각씩 대접하는
한낮의 뜨거운 장례
꼬마들도 뭔가에 이끌린 듯
눈을 떼지 못한다
자기장을 유유히 벗어나는 건
배가 없는 바람뿐이다
ㅡ출처 : 시집 『눈의 심장을 받았네』(실천문학사, 2010)
ㅡ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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밟혀 죽은 지렁이 한 마리
시체에 몰려드는 개미 떼
지렁이 시체를 자기장으로 발설한
시인의 재치가 남다르다
긴 시체에 몰려든 개미 떼들의 배가 불렀을 건
가능한 상상
먹이를 냄새 맡은 개미들이
마치 자기장에 이끌려 온 것처럼
시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이 능청
자기장을 유유히 빠져나갈 수 있는 건
오로지 배가 없는 바람뿐이라고 한다
식욕에 갇혀버린 것들이 빠져나갈 수 없는
이 광경
욕심 없는 바람이나 되어야겠다
이 뜨거운 장례에 눈을 떼지 못하는
꼬마들도 삶의 진정을 보았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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