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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감상

자기장을 읽다 / 길상호

오선민 2013. 11. 1. 14:50

'좋은 시·아름다운 세상'『詩하늘』편지

 

 

 

자기장을 읽다

 

길상호

 

 

밟혀도 꿈틀, 움직일 수 없다

마른 흙바닥 위에

지렁이는 죽고 말았다

자성 강한 죽음이

반대 극의 식욕을 불러들인다

쇳가루처럼 시커멓게

달라붙은 개미 떼

자기장이 참 길기도 하다

식은 국밥 대신

제 몸 한 조각씩 대접하는

한낮의 뜨거운 장례

꼬마들도 뭔가에 이끌린 듯

눈을 떼지 못한다

자기장을 유유히 벗어나는 건

배가 없는 바람뿐이다

 

 

 

ㅡ출처 : 시집 『눈의 심장을 받았네』(실천문학사, 2010)

ㅡ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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밟혀 죽은 지렁이 한 마리

시체에 몰려드는 개미 떼

지렁이 시체를 자기장으로 발설한

시인의 재치가 남다르다

긴 시체에 몰려든 개미 떼들의 배가 불렀을 건

가능한 상상

먹이를 냄새 맡은 개미들이

마치 자기장에 이끌려 온 것처럼

시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이 능청

자기장을 유유히 빠져나갈 수 있는 건

오로지 배가 없는 바람뿐이라고 한다

식욕에 갇혀버린 것들이 빠져나갈 수 없는

이 광경

욕심 없는 바람이나 되어야겠다

이 뜨거운 장례에 눈을 떼지 못하는

꼬마들도 삶의 진정을 보았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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