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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비평

[스크랩] 권현형의「최초의 사람」감상 / 장석남

오선민 2014. 5. 7. 02:13

권현형의「최초의 사람」감상 / 장석남

 

 

최초의 사람

 

   권현형

 

 

챙이 커다란 청모자를 쓴 아이가

제 동화책 속에서 걸어나와

검정 에나멜 구두로 땅을 두드린다

최초의 사람인 듯 최후의 걸음인 듯

갸우뚱갸우뚱 질문을 던지며 걸어다닌다

집을 나와서는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 봄의 부랑자들,

길바닥에 떨어져 누운 꽃점을 두고

차마 지나치지 못하여 한참을 서 있다가

바르비종 마을의 여인처럼 가만 무릎을 꿇는다

이삭 줍듯 경건하게 주워 올려 본래의 둥지

나무 가까이에 도로 놓아준다 방생하듯

봄날의 바다에 꽃의 흰 꼬리를 풀어 놓아준다

꽃 줍는 아가야, 환한 백낮에 길 잃은

한 점 한 점을 무슨 수로 네가 다 거둘 것이냐

몸져누운 세상의 아픈 뼈들을 무슨 수로

일으켜 세울 것이냐 한번 떨어져 나온 자리로는

다시 돌아갈 길 없다

네가 옮긴 첫 발자국이 그토록 무겁고 서러운

질문이었음을 기억하거라

 

 

                     —시집『밥이나 먹자, 꽃아』(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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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어여쁜 아이가, 세상의 때라곤 한 점 티끌도 묻지 않은 아이가 꽃을 줍고 있습니다. 이건 뭘까? 이 예쁜 것이 왜 땅에 떨어졌을까 질문하면서 꽃을 줍고 그것을 꽃나무 그늘에 다시 놓아줍니다. 그러나 꽃은 너무 많습니다. 아픔도 그 꽃잎만큼 많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아이에게 화자는 당부합니다. 한번 떨어져 나온 자리로는 다시 돌아갈 길이 없다는 것, 네가 이 세상에 온 첫 걸음이 '서러운 질문'이었음을 기억하라고.

   수백의 어린 생명들이 저 아름답기로 이름난 남녘의 봄바다에서 아무 죄도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면서 무슨 질문을 했을까요. '꽃을 줍던' 그 아이들의 질문에 대한 응답은 그저 미어지는 가슴일 뿐입니다.

 

  장석남(시인)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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