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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눈물값 / 천정환

오선민 2014. 5. 7. 02:39

[삶과 문화/5월 1일] 눈물값

 

〈한국일보〉입력시간 : 2014.04.30 21:02:47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사람들은 벌써 회의한다. 저같이 무참한 불의와 무능 때문에 참극을 겪고도 나아진 게 없고, 울고불고 통한에 몸부림치지만, 단지 지금뿐, 까마귀 고기를 먹은 것처럼 싹 잊어버리고 잘못은 반복될 것이다, 벌써 둔감해지기 시작하고, 지방선거도 집권당이 이길 것이며, 월드컵이 열리기만 하면 "대-한민국!" 외치며 웃고 다 잊을 것이다, 그리하여, 또 이런 고통과 억울한 죽음도 또 반복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당한 '이성' 안에서조차도 허무가 배어 있고 강렬한 자기불신이 들어 있지 않은가. 우리는 충분히 잘 애도하고 또 일상을 서서히 회복하되, 교훈을 얻어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이 땅에선 아이를 키울 수도, 삶을 살 수도 없다… 그러니 뭐라도 해야겠다, 이제 달라져야겠다. 그러나 정작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 앞엔 망연해진다. '살인마' 전두환의 군대가 5ㆍ18 열흘 동안 살해한 사람들이나, 4ㆍ19 때 이승만의 경찰이 죽인 학생ㆍ시민도 이보다 많지 않았다. 그래서 80년과 60년의 잔혹한 봄날 이후에 그랬듯, 썩어 바닷속에 가라앉아 버린 이 '민주공화국'을 다시 시작(reset)해야 한다고 믿는다. 총론적으론 그렇다.

 

이 나라와 사회의 문화는 다시 디자인돼야 한다. 이 참사가 이명박정권 이래의 복합적인 부패, 부조리, 착취, 무책임의 교차점 위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대안도 복합적이다. 정치와 일상의 과제, 그리고 제도와 의식의 여러 차원이 혼재한다.

 

그래야만 이 공화국의 '리셋'이 가능할 것이다. 사람 죽이고 달아나기 전에 썩고 무능한 선장을 조타실에서 끌어내려야 하겠으나, 그것이 이 나라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실질적인 계기가 되기 위해서, 또 20~30년 혹은 그보다 더 긴 세월을 써서 이 사회를 아이들을 키울 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나 자신들과 '마음'도 바꿔야 한다. '먹고사니즘'과 '각자도생' 외의 다른 가치가 모두 소탕ㆍ절멸된 상태를 극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이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국면에선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말은 위정자와 공권력의 무책임과 '구조자 수 0'이라는 어이없는 결과를 슬쩍 변호하기 위한 말과 구분되지 않기 시작했다. 정치적 책임과 법적 책임, 윤리적 책임을 분별해야 한다. 책임의 경중도 전혀 다르다. 나와 우리가, 누군가들의 고용주, 장교, 교수, 선생, 선장, 항해사라면, 또 우리가 전문가, 지식인, 기자, 공무원이라면 훨씬 더 많은 책임을 갖고 있다.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이 가장 무겁듯, 그런 그가 황당한 '유체이탈' 화법으로 말하면 안 되듯, 나와 우리도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 사회를 바꿀 방법을 모르진 않는 거 같다. 신비한 건 없다. 민주시민으로서의 일반적 책무를 이행하여, 직장과 지역사회, 언론과 공권력을 민주적으로 개조하는 것인데, 다만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라도 한 발 더 디딜, 정의를 위한 용기가 필요하다.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선언과 수행이 절실하다.

 

죄책감과 책임의식은 연결돼 있지만 다른 것인 듯하다. 오늘의 이 집단 죄책감은 추상적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제대로 된 나라에서 키울 수 있을까? 사회적 책임의식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죄책감은 곧 연기처럼 흩어질 것이다. 동료들과 손을 잡으며 구체적으로 실천할 과제 하나씩을 우선 생각해야겠다.

 

그런데, 이제 심지어 '적폐' 자신이 '적폐'를 척결해야 한다고, 국가를 개조해야 한다고 물타기 한다. 그러니 문제는 주체와 방향이다. 당장은 철저한 진상규명, 해경ㆍ해수부의 정경유착과 무능에 대한 단죄, 그리고 무능ㆍ무책임 정권에 대한 단호한 심판이 필요하다. 중장기적인 과제도 여기서 출발한다. 6월 4일에 '투표를 통한 심판'의 기회가 있다. 그러나 투표가 모든 것은 아니다. 분노와 추모, 공감과 연대의 대중적 구심으로서 자발적 범시민 추모ㆍ대책기구가 꾸려져야 한다.

 

많이 울었다. 5월이다. 정신도 차려야겠다. 반성하고 다짐해서 눈물값을 해야겠다.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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