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스크랩] 신을 믿는 사람들/ 백은선 본문
신을 믿는 사람들
백은선
밤이 오지 않아서
검은 눈의 아이들이
태양을 쥔 손을 놓지 않아서
밤이 끝나지 않아서
뒤집힌 풍경 위로 눈이 그치지 않아서
떠내려가는 텅 빈 얼굴을
수면이 가르치는 바람의 문법을
부를 수 없어서
바구니 안에는 사과 열 개
손 안에는 읽을 수 없는 운명
가까운 길을 멀리 돌아갈 때
나는 만족할 수 없는 식사에 대해 생각한다
죽은 사람 곁을 지키는 삼일 동안
매일매일
바람이 구름을 밀어 준다
수몰지구에서
네 신발이 발견되었다고
키 작은 남자가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그곳을 모른다
둥글게 모여 앉아 갓 태어난 신의 아이들은
빛을 주무른다
엇갈리는 빛들이 예쁘게 흔들린다 그때마다
마음이 부서지는 줄도 모르고 천진하고 끔찍하게
손장난을 한다
그 속에서 끝내 너를 찾지 못하고
죽은 거라고 결론지어야 한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까지
어두운 물밑까지
영영 밤이 오지 않아서
짝짝이 신발을 창가에 올려놓고
돌아누워 잠들 때
수심은 깊어질 수 없다
너는 왜 그곳에 갔을까
평생을 함께 지냈는데
나는 짐작도 할 수 없다
죽은 사람이 계속 죽어 있는 동안
마른 손을 감추고 딱딱해진 것들을 모아 상자에 집어넣는 동안
오늘은 두 번 신을 권유 받고
죽은 사람의 얼굴과 마주 앉아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의 경계를 생각한다
매일매일
아픈 사람과 더 아픈 사람
가장 공평한 죽음에 대해
계속되는 웃음과 위로에 대해
멸 개의 사과 같은 마음이 되려고 한다
—《웹진 문장》2015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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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선 / 1987년 서울 출생. 2012년 《문학과 사회》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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