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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감상

[스크랩] 신을 믿는 사람들/ 백은선

오선민 2015. 3. 26. 22:08

신을 믿는 사람들

 

   백은선

 

 

 

밤이 오지 않아서

검은 눈의 아이들이

태양을 쥔 손을 놓지 않아서

밤이 끝나지 않아서

뒤집힌 풍경 위로 눈이 그치지 않아서

떠내려가는 텅 빈 얼굴을

수면이 가르치는 바람의 문법을

부를 수 없어서

 

바구니 안에는 사과 열 개

손 안에는 읽을 수 없는 운명

가까운 길을 멀리 돌아갈 때

 

나는 만족할 수 없는 식사에 대해 생각한다

죽은 사람 곁을 지키는 삼일 동안

매일매일

 

바람이 구름을 밀어 준다

 

수몰지구에서

네 신발이 발견되었다고

키 작은 남자가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그곳을 모른다

 

둥글게 모여 앉아 갓 태어난 신의 아이들은

빛을 주무른다

 

엇갈리는 빛들이 예쁘게 흔들린다 그때마다

마음이 부서지는 줄도 모르고 천진하고 끔찍하게

손장난을 한다

 

그 속에서 끝내 너를 찾지 못하고

죽은 거라고 결론지어야 한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까지

어두운 물밑까지

 

영영 밤이 오지 않아서

짝짝이 신발을 창가에 올려놓고

돌아누워 잠들 때

수심은 깊어질 수 없다

 

너는 왜 그곳에 갔을까

평생을 함께 지냈는데

나는 짐작도 할 수 없다

 

죽은 사람이 계속 죽어 있는 동안

마른 손을 감추고 딱딱해진 것들을 모아 상자에 집어넣는 동안

 

오늘은 두 번 신을 권유 받고

죽은 사람의 얼굴과 마주 앉아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의 경계를 생각한다

 

매일매일

아픈 사람과 더 아픈 사람

가장 공평한 죽음에 대해

 

계속되는 웃음과 위로에 대해

멸 개의 사과 같은 마음이 되려고 한다

 

 

 

                      —《웹진 문장》2015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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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선 / 1987년 서울 출생. 2012년 《문학과 사회》등단.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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