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스크랩] 강연호의 「커튼」감상 / 김석환 본문

시 비평

[스크랩] 강연호의 「커튼」감상 / 김석환

오선민 2015. 4. 22. 11:23

강연호의 「커튼」감상 / 김석환

 

 

커튼

 

   강연호

 

 

컴퓨터 뒤로 뻗은 전선들

저 늘어선 실뿌리들

채 감추지 못한 탯줄들

천 길 만 길 악착같이 기어가는 줄기들

배후는 뒷골목처럼 지저분하고

이면은 늘 엉켜 있지만

 

백 개도 넘는 글자판이

날름날름 놀리는 혓바닥을

마우스의 오른쪽과 왼쪽 버튼이

가리키고 지시하는 삿대질을

잘도 받아 넘긴다

종이도 잉크도 없이

배알도 없이 속도 없이

 

환한 모니터의 뒤쪽

블랙홀, 우주 커튼처럼

블랙으로 남아야 할 것이 있다

커튼으로 드리워져야 할 것이 있다

볼장 다 보기 전에

끝장나기 전에

 

배후에도 예의가 있다

외면해야 할 이면이 있다

 

......................................................................................................................................................................................

 

   모든 존재에는 인체처럼 앞과 뒤가 있는 것일까. 컴퓨터에도 “환한 모니터”가 앞이라면 뒤엔 그 기능을 발휘하게 해주는 전선들이 뻗어 있고 “실뿌리들”, 채 감추지 못한 그 “탯줄들”이 지저분하게 엉켜 있다. 그러나 그 “배후”는 글자판의 “날름날름 놀리는 혓바닥”과 마우스의 “가리키고 지시하는 삿대질”을 잘 받아 넘긴다. 자신의 욕망이나 의지를 드러낼 “종이나 잉크도” “배알도 속도 없”는 “블랙홀”이지만 그곳은 “예의”를 지켜주듯 커튼으로 늘 가려져 있다. 그런데 정작 그 “외면해야 할 이면”, 아니 늘 무시당하고 마는 “배후”가 있어 컴퓨터는 작동하며 기능을 다하니 아이러니가 아닌가. 그런데 세상에도 전면에서 빛을 내는 무리와 보이지 않는 이면에서 와면 당한 채 수고하는 무리가 있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인간 개체도 외부로 드러난 얼굴 이면에 또 다른 얼굴이 숨어 있는 부조리하고 이중적인 존재이다.

 

  김석환 (시인)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메모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