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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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호의 「커튼」감상 / 김석환
커튼
강연호
컴퓨터 뒤로 뻗은 전선들
저 늘어선 실뿌리들
채 감추지 못한 탯줄들
천 길 만 길 악착같이 기어가는 줄기들
배후는 뒷골목처럼 지저분하고
이면은 늘 엉켜 있지만
백 개도 넘는 글자판이
날름날름 놀리는 혓바닥을
마우스의 오른쪽과 왼쪽 버튼이
가리키고 지시하는 삿대질을
잘도 받아 넘긴다
종이도 잉크도 없이
배알도 없이 속도 없이
환한 모니터의 뒤쪽
블랙홀, 우주 커튼처럼
블랙으로 남아야 할 것이 있다
커튼으로 드리워져야 할 것이 있다
볼장 다 보기 전에
끝장나기 전에
배후에도 예의가 있다
외면해야 할 이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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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에는 인체처럼 앞과 뒤가 있는 것일까. 컴퓨터에도 “환한 모니터”가 앞이라면 뒤엔 그 기능을 발휘하게 해주는 전선들이 뻗어 있고 “실뿌리들”, 채 감추지 못한 그 “탯줄들”이 지저분하게 엉켜 있다. 그러나 그 “배후”는 글자판의 “날름날름 놀리는 혓바닥”과 마우스의 “가리키고 지시하는 삿대질”을 잘 받아 넘긴다. 자신의 욕망이나 의지를 드러낼 “종이나 잉크도” “배알도 속도 없”는 “블랙홀”이지만 그곳은 “예의”를 지켜주듯 커튼으로 늘 가려져 있다. 그런데 정작 그 “외면해야 할 이면”, 아니 늘 무시당하고 마는 “배후”가 있어 컴퓨터는 작동하며 기능을 다하니 아이러니가 아닌가. 그런데 세상에도 전면에서 빛을 내는 무리와 보이지 않는 이면에서 와면 당한 채 수고하는 무리가 있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인간 개체도 외부로 드러난 얼굴 이면에 또 다른 얼굴이 숨어 있는 부조리하고 이중적인 존재이다.
김석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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