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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진, 그림방

[스크랩] 오귀스트 톨무슈 (Auguste Toulmouche / 1829~1890)

오선민 2015. 9. 23. 18:29

 

 

 

스물 두 살의 클로드 모네가 그림 공부를 위해 파리에 왔을 때 잠깐이었지만 그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모네의 사촌 자형인 오귀스트 톨무슈 (Auguste Toulmouche / 1829~1890)라는 화가였죠.

잠깐 자형(姉兄)이라는 단어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누나의 남편은 자형, 여동생의

남편은 매제라고 한다고 배웠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불렀지요. 형제와 자매를 줄 긋기 해보면 자형, 매제가

맞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매형이라는 말로 통일이 되더군요. 그렇게 써도 원래 맞는 것인지, 아니면 대세에

밀려 그렇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라져 가는 자형이라는 말이 안타깝습니다. 이제 톨무슈의 작품을

보러 떠나겠습니다.

 

 

 

 

입맞춤   Le baiser

 

입맞춤은 단어만으로도 달콤합니다. 처음 입맞춤 할 때 하늘이 도는 것 같던 기억은 수 십 년이 지났어도 잊기

어렵습니다. 맨 정신으로는 몇 년을 해야 할 이야기의 양이 입술을 통해 순식간에 건너가고 건너 왔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멋진 복장의 이 두 남녀는 조금 다르군요. 지금의 입맞춤은 식사가 끝나고 작별 인사처럼 보입니다.

식탁 위 음식도 그렇고 서로 눈을 빤히 뜨고 있는 모습 때문입니다. 아마 식사 중의 이야기는 그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식탁보가 접힌 자국이 정확하게 식탁의 가운데를 지나고 있는데 서로의 입술이 닿은 위치도 가운데

선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좀 더 마음이 끌리는 사람의 몸이 더 기우는 것 아니던가요? 느낌이지만 요즘 유행하는

웨딩 촬영의 한 장면 같아 웃음이 납니다.

 

낭트에서 태어난 톨무슈의 유년 시절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다만 낭트라는 도시가 프랑스에서

가장 큰 항구 중 하나이고 그 거리를 다양한 인종과 언어들이 채웠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가 자란 성장 환경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몸 속에서 조금씩 녹아

세파에 흔들리는 영혼을 시들지 않게 하지요.

 

 

 

 

 

옛날의 청혼 방법    Classical Courtship / 79.1cm x 62.2cm / 1853

 

남자가 입은 옷을 보아하니 시기는 로마나 그 이전 시대이겠지요. 당시에는 어떻게 청혼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림 속 분위기는 요즘이나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난 뒤 준비했던 목걸이를 건네고 나서

살짝 턱을 손으로 들어 눈을 맞추면서 청혼을 하는 중이겠지요. 남자의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여인의 눈을 보니 이미 이야기는 끝난 것 같습니다. 이제 입맞춤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분위기가 끈적거리죠?

 

조각가였던 삼촌에게서 처음으로 미술 교육을 받은 톨무슈는 열 두 살 무렵 그 지역의 다른 조각가에게서

드로잉을 배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3년 뒤에는 역시 낭트의 초상화가로부터 2년 간 회화를 배웠습니다.

기본적인 미술 공부를 끝낸 톨무슈는 더 깊은 공부를 위해 1846, 열 일곱이 되던 해 파리로 갑니다

 

 

 

 

 

망설이는 신부   The Reluctant Bride / 59.7cm x 48.4cm / 1866

 

이거 큰 일 났습니다. 결혼식을 앞 둔 신부가 막무가내로 버티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결혼식이

무서운 것이죠. 결혼식 이후 결혼이라는 것 자체가 무서울 수도 있습니다. 막상 닥치고 보니 걱정이 태산입니다.

신부를 달래기 바쁜 여인들은 신부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이마에 뽀뽀도 해주고 손도 잡아 주고 있지만

흰자위가 많은 눈이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철이 덜든 신부였군요. 이런 분위기와는

관계없이 어린 동생은 신부의 화관을 쓴 자신의 모습이 좋기만 한 모양입니다. 생각해 보면 여인들의 생애는

맨 왼쪽의 아이에서 가운데 신부로 그리고 오른쪽의 여인으로 흘러가는 것이겠지요.

 

파리에 온 톨무슈는 스위스 출신 화가인 샤를 글레르의 화실에 입학합니다. 샤를 글레르는 에콜 드 보자르의

교수였지만 그의 화실은 다른 화실에 비해 좀 더 자유스러운 분위기였습니다. 글레르의 화실에는 르누아르와

모네 그리고 시슬리와 바지유 같은, 후에 쟁쟁한 인상파 화가들이 공부하던 곳이기 때문에 인상파 이야기가

나오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입니다.

 

 

 

 

 

위로    Consolation / 65.4cm x 55.2cm / 1867

 

여인들의 옷이 상복처럼 보입니다. 손에 쥔 흰 손수건을 보니 아마 장례식을 마치고 방금 돌아온 모양입니다.

혹시 이 방은 세상을 떠난 사람이 마지막까지 있었던 곳은 아닐까요? 텅 빈 의자가 유난히도 크게 보입니다.

떠난 사람을 생각하는 여인의 얼굴은 슬픔에 젖어 있습니다. 여인의 눈길이 닿은 곳, 복잡하게 얽힌 실 뭉치가

있습니다. 그 것을 바라보는 여인의 마음도 엉킨 실 뭉치와 같겠지요.

 

톨무슈는 글레르의 화실에서 그가 기대 했던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카데믹 화법과 실제 모델을 그리기

전에 석고상을 꼼꼼하게 묘사하는 것도 배웠습니다. 2년 동안의 수업을 마치고 톨무슈는 파리 살롱전에 데뷔할

모든 준비를 끝냈습니다. 그러나 1848년 프랑스에서는 2월 혁명이 일어나고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는 일이

일어납니다.

 

 

 

 

 

감탄의    The Admiring Glance / 59cm x 45cm / 1868

 

보면 볼수록 예쁜 얼굴이네, 아무리 봐도 흠잡을 곳이 없어 --.

그림 속 여인이 자신에게 하는 말입니다. 작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아주 만족한 모습입니다. 요즘 말로

자뻑이라고 하던가요? 그런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자기 자신을 자기가 존중해주지 않으면 누가 존중하겠습니까?

스스로 예쁘고 멋지다고 생각을 안 하면서 남들이 그렇게 봐 주기를 바라는 것이 맞는 것일까요?

좀 부끄럽지만 저는 가끔 거울 앞에서 저를 마구 칭찬합니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고

아내는 저를 자뻑 대왕이라고 부르지만, ‘자뻑자존을 구별하지 못하는 만행이라고 대꾸하곤 합니다.

 

 

 

 

 

신생아  The New Arrival / 56.8cm x 44.8cm / 1861

 

언젠가도 썼던 기억이 나는데 신생아를 새로 도착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은 다분히 철학적입니다. 문학적인

표현 방법이기도 하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잠시 머무는 곳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지요. 그래서 죽음을 또 다른 여행으로 보는 것은 문학임과 동시에 철학입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이제 막 도착한 사람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요람의 휘장을 살짝 들어 올린 아이의 손은 안녕이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그런데, 요람 속 아이가 너무 커 보이지 않으신지요? 더구나 2:8 가르마를 하고 있는 듯 해서 마치

큰 아이가 누워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잘 커주기를 바라는 마음, 무릎에 깎지 낀 엄마의 손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톨무슈의 작품 속에는 매력적으로 묘사 된 젊은 엄마와 아이의 따뜻한 모습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한편으로는

다양한 로멘틱한 장면 속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는 여인들의 모습도 등장했습니다. 톨무슈는 이와 같은 주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화가로 성공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오후의 한가한 풍경   An Afternoon Idyll / 82.5cm x 63.5cm / 1874

 

책을 보던 여인도 책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여인도 그만 낮 잠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닮은 얼굴을 보니

자매인 것 같은데, 두 여인이 입고 있는 옷이 어찌나 고운지요. 바닥에 깔린 양탄자의 문양과 벽의 장식도

화려함의 끝을 달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운 옷을 입고 꿈을 꾸면 그 꿈도 고울까요? 문득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한 톨무슈의 팔레트는 얼마나 컸을까를 상상해 봤습니다. 제가 아는 세상의 모든 색이 다 들어 있거든요.

 

톨무슈의 작품 속 아름다운 여인들이 입고 있는 옷들은 우아합니다.

여인들의 의상에 관한 한 제임스 티소 (http://blog.naver.com/dkseon00/140056635475) 가 가장 먼저

떠 오르지만 소위 복식화라는 장르를 연 사람 중 한 명이 톨무슈입니다. 그림 속 여인들의 옷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었고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복식화는 톨무슈에세 성공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 복 덩어리였습니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Blue Ocean’에 배를 띄우는 사람은 성공합니다.

 

 

 

 

우아한 여인    An Elegant Lady / 1874

 

문을 살짝 여인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두 가지 상상이 가능하겠군요. 문 밖에 있는 사람을 보는 것이기도

하고 문을 열다가 문득 떠 오른 생각에 멈칫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인은 밖으로 나가려는 것일까요,

몸을 멈춘 곳일까요? 푸른색 일본풍 벽지가 긴장감을 주고 있어서 여인의 자세가 궁금증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간혹 계단을 뛰어 오르다가, 그림을 보다가, 운전을 하다가 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을 보다가 멈칫할 때가

있습니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람이 떠 오를 때이죠. 그 때는 그냥 가만히 있습니다.

 

톨무슈의 작품의 특징은 낭만적인 주제에 역사화에서 볼 수 있는 감동적인 표현 기법이 쓰였다는 것입니다.

아마 글레르의 화실에서 습득했겠지만 아카데믹 화법으로 연극 무대의 한 장면을 옮겨 놓은 듯한 모델들의

자세를 묘사한 것도 그만의 특징이 되겠지요. 1861, 톨무슈는 다시 살롱전에서 2등 메달을 수상합니다.

 

 

 

 

편지    The Letter / 62.9cm x 38.7cm / 1879

 

여인의 눈 빛이 아련합니다. 책상 위에는 방금 읽은 편지가 놓여 있고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했는지 손에 든

손수건은 입에 닿았습니다. 여인이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저는 여인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혹시 눈에 쓰인

글자를 보셨는지요 보고 싶다.

 

 

 

 

실내 풍경 속의 여인   Young Woman In An Interior / 64.8cm x 45.7cm / 1881

 

편지를 읽고 난 뒤 감출 수 없는 표정이 이 여인에게도 나타나 있군요. 웃을 듯 말 듯한 얼굴을 보니 끓어 오르는

신열 같은 것이 머리를 차지하고 있겠지요.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편지를 받고 저런 표정을 지어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 편지가 누군가에게 저런 표정을 짓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는 그런 편지를 쓰는 일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모네에 관한 그 다음 이야기는 우리도 잘 아는 것입니다. 모네는 열정을 가지고 글레르 화실에서 공부를

시작했지만 곧 그기 실제로 본 것을 그리기 보다는 이상화된 아카데믹 화법으로 그리는 것에 대해 고민을 했고

서로 뜻이 맞았던 르누아르, 시슬리, 바지유와 함께 4인방을 결성, 글레르 화실을 뛰쳐나가게 됩니다.

 

 

 

 

 

장미 정원 속의 젊은 여인   A Young Woman in a Rose Garden / 49.5cm x 32.4cm / 1886

 

아무리 봐도 너무 노골적으로 연출한 모습이지만 장미 속에 있는 여인이 고운 것은 사실이고,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는 말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맞는 말입니다. 위로 올라 갈수록 장미의 크기가 작아져 하늘로 오르는 듯

하는데, 여인의 마음도 그와 같겠지요.

 

1870년 톨무슈는 레종 드 뇌르 훈장을 받습니다. 젊은 나이인 것을 감안하면 뭔가 특별한 일이 있었을 것

같은데 수상 이유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 해 보불 전쟁에 발발하고 다음 해 전쟁이 끝나고 난 뒤 서서히

톨무슈의 명성은 가라 앉기 시작합니다. 인상파가 본격적으로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사진기의 발달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화장   La Toilette / 88.9cm x 50.8cm / 1889

 

머리를 이렇게 올려볼까? 너무 그런가?

전신 거울 앞에선 여인의 몸짓이 부산합니다. 화장 하는 모습을 눈 여겨 본 적이 없으니 그림 속 과정이 화장의

어디쯤에 해당하는지 저는 알 수 없지만 제가 옆에 있었다면 한마디 해주고 싶습니다.

아가씨, 지금 아가씨 얼굴에 떠 있는 미소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가슴에 장미까지 더해졌는데 무얼

더 바라시는지요?

 

1860년대부터 좀 더 복잡한 구성을 시험해 보던 톨무슈의 작품에도 미미한 변화가 옵니다. 변화의 제공자는

모네였습니다. 완고한 아카데믹 기법의 화가였지만 작품에 사용되는 색도 이전보다 밝아졌고 일본풍의 소품이

작품에 등장하기도 한 것이죠. 생각해보면 인상파가 화면에 담았던 빛은 확실히 매혹적입니다. 화가라면 가져

오고 싶은 것 아닐까 싶습니다.

 

 

 

 

 

무도회 준비    Preparing For The Ball / 54cm x 31cm

 

톨무슈가 그림 속에 묘사한 여인들은 거울을 들고 있는 모습이 많군요. 예전 이외수 선생의 책에서 여인은

빗과 거울만 준다면 평생을 감옥에서 지낼 수 있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해하기에 따라서는 여성

단체로부터 돌을 맞을 표현이기도 하지만 여인의 숨은 본능을 그렇게 짧게 표현하기도 힘들지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미를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신발까지 보라 빛 톤으로 준비한 것을 보니, 오늘 무도회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파리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적당한 크기의 톨무슈 작품은 매우 인기가 있었고, 1878년 만국 박람회에

출품한 작품으로 3등 상을 수상합니다. 톨무슈는 예순 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 날 때까지 작품 활동을 계속

했는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평생 아름다운 여인들을 그림에 담았으니 좋은 인생 아니었겠습니까?

 

 

 

 

자부심   Vanity / 73cm x 48cm / 1889

 

Vanity 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뜻이 자부심 말고도 허영이라던가 자만이라는 것도 있지만 제가 고른 것은

자부심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양의 차이는 있지만 나르시시즘이 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나이를

먹으면서 자신에 대한 집착보다는 타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그 양이 아주 적어지지만, 간혹 그 크기가

어른이 되어도 줄지 않는 경우가 있지요. 그림 속 여인은 거울로 보는 것도 부족해서 자신의 모습에 뽀뽀를

하는 정도입니다. 자부심이 커지면 자만이 되고 자만의 끝은 파멸이라는 정도만 알면 자부심, 좋은 것이지요.

돌아 보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이 가장 큰 자부심이었습니다.

 

1852, 공화정의 대통령이었던 루이 나폴레옹은 황제로 즉위합니다. 프랑스 국민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황제는 톨무슈의 성공을 도와 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해 살롱전에서 톨무슈는 3등 메달을 수상하는데 황제가

이 작품을 직접 구입합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외제니 황후가 살롱전에 출품한 그의 풍속화를 보고는 아주

기뻐하며 그의 작품을 다량 구매했습니다. 황제와 황후가 작품을 구입했으니 그의 명성이 알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요.

 

 

 

 

러브 레터    The Love Letter / 63.5cm x 43.8cm / 1883

 

화면을 가득 채운 노란색이 느긋하고 여유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손에 든 편지를 보는 여인의 자세에서

제가 가장 감탄한 것은 탁자에 올려 놓은 여인의 손입니다. 편지를 읽는 여인의 모든 기분이 곱게 올려 놓은

손가락 마다 실려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에 몰두하면 나타나는 자세 아니던가요? 러브 레터를

받았으니 마음은 사정없이 뛰겠지만 흐트러짐 없는 여인의 자세 --- 멋지시군요.

 

1862년 서른 셋의 톨무슈는 결혼을 하는데, 클로드 모네의 사촌 누이였습니다. 물론 당시 모네는 오늘 날

우리가 알고 있는 모네가 아닙니다. 마침 모네의 아버지는 파리에서 아들의 미술 공부를 감독할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조카 사위였던 톨무슈가 제격이었겠지요. 모네가 파리로 오자 톨무슈는 모네를 바로 글레르 화실에

입학시킵니다.

 

 

 

출처 : 화가 진상용
글쓴이 : 샘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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