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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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백윤석
문장부호, 느루 찍다2
점 하나 못 챙긴 채 빈 공간에 갇히는 날
말없음표 끌어다가 어질머리 잠재우고
글 수렁 헤쳐 나온다,
바람 한 점 낚고 싶어
발길 잡는 행간마다 율격 잠시 내려놓고
어머니 말의 지문 따옴표로 모셔다가
들레는 몇 몇 구절을
초장으로 앉혀야지
까짓것, 급할 게 뭐람 쌍무지개 뜨는 날엔
벼룻길 서성이는 달팽이도 불러들여
중장은 느림보 걸음,
쉼표 촘촘 찍어 보다
그래도 잘 익혀야지, 오기 울컥 치미는 날
뙤약볕 붉은 속내 꽉 움켜쥔 감꼭지로
밑줄 쫙! 종장 그 너머
느낌표를 찍을 터
[당선소감] / 꿈에서 조차 글 썼던 힘든 시간들의 보상인듯
꿈에서도 글을 썼습니다. 꿈속에서 쓴 글이 너무 좋아 잊지 않으려고 반복해서 외우다가 다 외웠다 싶어 눈을 뜨면 캄캄 절벽 같은 앞날….
2000년부터 글을 썼으므로 햇수로 따지면 꽤 오랜 시간이지요. 신춘문예 최종심에 몇 차례 거론된 후 절필한지 5년. 늦게 떠났던 이민생활의 어려움이 다시 펜을 들게 했습니다. 작년 9월 부랴부랴 귀국해서 근 1년여를 잠을 아끼며 창작과 퇴고를 거듭했습니다. ‘이 힘들고 고된 길을 왜 내가 사서 가려 하는지’에 대해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그때마다 그만두고 싶은 순간을 사리물고 버텨내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시련 뒤에는 반드시 즐거움이 온다는 걸 몸소 체험하는 순간입니다.
행복합니다. 힘겨웠던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준 제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기회를 주신 경상일보와 심사위원 선생님, 시조의 눈을 뜨게 해주신 윤금초 교수님, 한분순 선생님, 같이 공부한 열린시조학회 회원들, 그리고 배우식 회장님께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부모의 이민에도 구김살 없이 훌륭하게 자라준 아들 세진과 딸 유진이와 이 영광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이제부터가 걸음마의 시작입니다. 방심하지 않고 치열하게 우리의 가락을 노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약력-
●1961년 서울 출생·건국대 경영학과 졸업
●중앙시조백일장 4회 입상
●현재 (주)예인건설산업 근무
[심사평-박기섭]‘느루 찍은’ 문장부호, 행간의 변화 이끌어
새해 벽두, 우리는 신생의 불씨를 안고 완고한 기성의 벽을 허무는 한 편의 득의작을 기대한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역사와 자연, 인간과 생명에 대한 다양한 성찰과 인식의 층위를 보여주었다. 정독 끝에 ‘다산, 화성에 오르다’(송태준), ‘김 발장을 뜨며’(김승재), ‘막그릇을 위한 안단테’(송정자), ‘구형왕릉’(임채주), ‘문장부호, 느루 찍다’(백윤석) 등을 가려냈다.
그 중에서 올해의 당선작은 ‘문장부호, 느루 찍다’다. 제목부터가 현대시조의 ‘현대성’을 강하게 부각하는 이 작품은 메타시의 성격이 짙다.
시조 3장의 속성을 적절한 비유와 적확한 표현으로 풀어내고 있다. 말없음표·따옴표·쉼표·느낌표 같은 문장부호를 제목 그대로 느루 찍음으로써 행간의 변화를 이끈다.
네 수의 결구를 각기 다르게 처리한 데서 보듯, 일상에 만연한 감성의 상투화를 극복하고자 하는 창조의지가 충일하다.
이는 신춘문예에서 기대하는 분명한 미학의 개진을 보여주는 일이다.
또 한 사람의 시인을 맞는 기쁨이 크다. 시조의 묵정밭을 가는 보습이 된다는 각오로 정진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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