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스크랩] 소식 / 최문자 본문

좋은 시 감상

[스크랩] 소식 / 최문자

오선민 2016. 2. 12. 09:43

소식

 

  최문자

 

 

 

죽어있어도 좋은데

소식이 온다

 

아침 신문에서 그 사람 관련기사를 읽었다

그 이름 밑에 빨갛고 노란 발이 달린다

 

저기

신문 위에 말 한 마리 서있다

 

말은 위험한 기억의 언덕배기를 슬슬 넘어서

찔레꽃 덤불 속으로 쑥 들어가 버린다

 

그와 나,

죽도록 반대방향으로 말을 달렸다

오늘 아침 그 말들은 왜 살아날까?

찔레꽃 덤불 속에서 부스럭거리고 있다

더는 걸어 들어갈 수 없어 말이 꽃 속에서 우뚝 선다

 

신문의 다른 기사를 더듬더듬 읽어갔다

글자들이 찔레줄기 알가시가 되어 핏줄을 찌르며 무더기로 올라온다

 

아침은 혼미하도록 턱없이 빛나고

거실 중간에 나는 말뚝처럼 박혀있다

말뚝 한 쪽 고리에 걸린 그의 밧줄은 언제나 팽팽하다

밧줄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 끝에, 말 한 마리 서있다

 

철사줄처럼 가느다란 소식

말 한 마리 보내는 날

아무도 모르게 나는 마지막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시와 표현》2016년 1월호

--------------

최문자 / 1943년 서울 출생. 198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귀 안에 슬픈 말 있네』『나는 시선 밖의 일부이다』『울음소리 작아지다』『나무고아원』『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사과 사이사이 새』『파의 목소리』. 시선집 『닿고 싶은 곳』.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메모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