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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비평

[스크랩] 나의 시를 말한다 | 박준

오선민 2016. 2. 12. 09:47
나의 시를 말한다 | 박준

 

    <한겨레>2016.01.30   

 

 

 

당신에게서

  -태백 

 

 

 

그곳의 아이들은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제 몸통보다 더 큰 울음을 낸다고 했습니다
사내들은 아침부터 취해 있고 평상과 학교와 공장과 광장에도 여름빛이 내려,
이어진 길마다 검다고도 했습니다
내가 처음 당신에게 적은 답서에는 갱도에서 죽은 광부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질식이나 아사가 아니라 터져 나온 수맥으로 익사를 합니다
하지만 나는 곧 그 편지를 구겨버리고는
‘이 편지가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새로 적었습니다

 

 

새해, 새날부터 바람이 차다. 숨을 깊게 들이면 코에서부터 가슴까지 냉한 기운이 감돈다. 기도(氣道)가 이렇게 연결이 되어 있구나 하고 느껴지는 감각이 새삼스러우면서도 재미있어 몇 번 더 깊은 숨을 쉰다. 곧 기침을 한다.

 

그러고 보니 몇 해 전에는 겨울을 겨울답게 보내겠다는 다짐을 하고 무작정 태백에 간 적이 있었다. 연애도 시도 삶도 마음처럼 되지 않던 때라 관광이나 여행보다는 도피나 유배라고 불러야 할 여정이었다.

 

나는 먼저 터미널 근처 여관에 방을 하나 얻었다. 한 사흘쯤 머물 것이라 이야기를 하고 여관비를 흥정했다. 낡은 건물 외관을 감안하더라도 내부는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방의 한가운데는 오래 앉아 있기 힘들 정도로 뜨거웠고 가장자리는 배관이 없어 그런지 냉기가 돌았다.

 

나는 마음에 드는 시를 한 편 쓸 때까지 방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고 가방에 있던 술로 몸을 데웠다. 잠을 잘 때는 뜨거운 바닥과 차가운 바닥에 번갈아 몸을 뉘였다.

 

이튿날에는 여관 주인에게서 안 쓰는 밥상을 하나 얻어와 책상으로 삼았다. 그렇다고 해서 안 써지던 시가 잘될 리는 없었다. 결국 나는 태백에서 머무는 사흘 동안 한 편의 시 아니 한 줄의 문장도 쓰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와야 했다. 몇 번 슈퍼에 간 것을 제외하고는 여관 밖을 벗어나지도 않았다.

 

무슨 특별한 경험처럼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작정을 해도 시가 써지지 않는 경우는 많다. 꼭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시인들이 그렇다. 시는 어떤 감정이나 기억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감정이 너무 강렬하면 시가 부서지고 감정이 흐릿할 때는 억지와 작위가 생기기 때문이다. 마치 너무 뜨겁거나 차가운 태백의 여관방처럼.

 

또 나는 이 시 쓰기라는 것이 꼭 울음 같다는 생각도 한다. 울고 싶다고 해서 억지로 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만 울고 싶다고 해서 그칠 수도 없는 울음.

 

이듬해 여름 나는 태백을 다시 찾았다. 지역에서 가장 크게 번성했던 탄광촌, 철암을 취재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지난겨울에 쓰지 못한 시를, 그것도 몇 편을 연이어 썼다. 위의 시도 그중 한 편이다. 태백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사실 이 시를 이루고 있는 것은 지난겨울 주체하지도 못하고 시로 쓰지도 못했던 감정과 기억들이다.

 

살아오면서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맞이해야 할 때가 많았다. 부당하고 억울한 일로 끙끙 앓는 날도 있었고 내 잘못으로 벌어진 일에는 스스로를 무섭게 몰아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인 일은 이때의 마음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이 간단한 사실에서 얼마간의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 힘으로 몇 줄의 시를 쓴다.

 

다시 새해다. 내 안의 무수한 마음들에게도 한 해씩 나이를 더해주고 싶다. 곧 봄이 오면 태백 어디쯤 아니 내 좁은 방에서라도 마음들을 펼쳐놓고 볕을 쬐일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중 잘 마른 마음 하나를 골라 아래와 같은 시를 새로 적을 수도 있겠다.

 

그때 우리는
자정이 지나서야

 

좁은 마당을
별들에게 비켜주었다

 

새벽의 하늘에는
다음 계절의
별들이 지나간다
별 밝은 날
너에게 건네던 말보다

 

별이 지는 날
나에게 빌어야 하는 말들이

 

더 오래 빛난다

 

-‘지금은 우리가’ 전문,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중에서

 

박준
박준

 

박준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문학을 잘 배우면 다른 이에게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대학과 대학원에서 알았다. 200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해 2012년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를 펴냈다. 제31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우리의 모든 시간을 긍휼히 여기다

 

 

새로 쓰였는데, 이미 오래된 시가 있다. 시간의 깊은 퇴적층과 상처에 대한 긴 이해의 흔적을 지닌 시. 박준의 시는 먼 윗대부터 쌓여온 감각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발성으로, 우리가 지나쳐 온 빛바랜 삶의 감각들을 일깨운다. 골목과 정류장과 옥탑방, 별들과 굴다리 밑 전단지와 번쩍이는 군화 등 허름한 장소와 적막한 사물에 새겨져 있는. 더 정확히는, ‘나’와 ‘당신’이 수없이 어긋나며 공유해 온 감각적 실존의 오래된 삶을 되살린다. 시란 우리가 살아낸 모든 시간을 긍휼히 여기고, 따뜻하게 돌보며, 언제까지나 잊지 않는 일이라는 듯.

 

박준의 시는 사랑과 아름다움에 ‘매혹당한 영혼’이,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상실과 고통에 ‘관통당한 존재’로 살아가는 비극을 노래한다. 당신에게 사로잡힌 채 당신을 잃어버린 ‘나’는 불치이거나 난치인 삶에 “고음(高音)의 노래”로 맞선다. “사실 사람의 몸에서 그림자보다 먼저 튀어나오는 것은 노래다”(‘모래내 그림자극’). 21세기에도 시는 여전히 노래임을 첫 시집 한 권으로 증명한 박준은 ‘석탄이 쌓인 폐’와 ‘지는 별’에서도 노래를 꺼낸다. 그 노래들의 후렴.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미인’은 그렇게 지어 온 당신의 이름이다.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 ‘님’처럼 누구나 가져다 쓸 수 있는 공용어다. 물론 어떤 이름으로도 당신을 되찾을 수 없으며, 어떤 비문(碑文)이나 비문(秘文/非文)으로도 당신을 애도할 수 없다. 당신에게 꼭 맞는 이름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러나 “사람을 잃은 사람”이, “사람의 이름으로/ 지어지지 못하는 글자들을” “오래 생각해 보는 길”(‘입 속에서 넘어지는 하루’)의 이름은 정확히 있다. 시 혹은 사미인곡(思美人曲). “내 이름을 불러주던/ 당신의 연음(延音)”과 “다음 생의 이름을/ 점쳐 보는 저녁” 사이에서 작명의 실패를 감수하며 부르는 텅 빈 이름. 비명(非名)이거나 울음인.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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