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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비평

[스크랩] 신문보는 남자/ 전윤호

오선민 2016. 4. 14. 15:36

 

 

 

신문보는 남자/ 전윤호


위성도시로 가는 전철에서

손잡이에 매달려 내일자 조간을 읽는 남자

반을 접어도 옆사람과 부딪치는 정치면을

두 번 읽는 남자 아파트 분양공고 위에

땀방울을 떨구는 남자 최고 발행부수의 권위를 신뢰하고

독설이 강한 사설에 이마가 조금씩 벗겨지는 남자

선거 때마다 고민하면서도

늘상 1번만 찍은 남자 매일 300원짜리 신문을 사면서

중산층이 된 남자 한번도 어제 기사를

다시 읽어보지 않은 남자 종점까지 가서

내일을 구겨 쓰레기통에 처박은 남자

네 컷짜리 만화보다도 볼 게 없는

어딘지 낯익은 남자

 

 

-시집『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문학세계사,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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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첼리스트 장한나는 한 신문칼럼에서 ‘신문은 인류가 쓰는 일기장’이라고 말한 바 있다. 모택동은 독학으로 공부하면서 신문을 중요 텍스트로 삼았다. 신문은 세상의 현재를 스크린 하여 매일 우리에게 브리핑한다. 요즘은 다른 매체의 발달로 신문의 비중이 줄어들긴 했지만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사의 위력은 여전하며, 신문을 통하지 않고는 세상물정을 속속들이 알기도 어렵다. 문제는 세상을 지배하는 그 언론의 기사가 진실한가이며, 기득권이나 특정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진정한 국민의 편에 복무하는가 하는 점이다.

 

 신문 내용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지면은 전통적으로 정치면이다. 한국인의 정치에 대한 관심은 무슨 흥미진진한 소설을 보거나 긴장감 넘치는 스포츠게임을 관전하는 듯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에 비하여 현실정치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 문제점을 잘 진단하고 언론을 개혁하려 했으나, 결국 그들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채 실패로 끝났다. 또한 냉소주의가 만연해 겉으로는 정치적 무관심 계층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역시 따지고 보면 정치에 대한 관심의 결과이다.

 

 퇴근길 ‘내일자 조간’을 사서 읽으면서 ‘독설이 강한 사설에 이마가 조금씩 벗겨지는’ 동안에도 우리의 삶은 너무나 평범하고 따분했다. 선거 때마다 고민하면서도 늘 같은 번호만 찍어왔다. 설령 다른 번호를 찍었다 해도 내 일상에서 달라진 건 없었다. 그럼에도 다시 선거철은 와서 지난 몇 주 사방 천지 색색의 바람막이점퍼를 입고 어깨띠 맨 사람들이 들쑤시고 다녔다. 자극적인 조미료를 잔뜩 들어부은 종편채널이 미디어의 해악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부추기면서 마치 사람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은 정치 밖에 없는 양 북새통을 이루었다.

 

 출마자의 면면을 보면 후하게 잡아도 8할 이상은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나선 인물이란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희박한 패를 잡고 한 알 밀알이 되겠노라 읍소하면서 선거운동기간 연일 그들의 일방적인 구애를 들었다. 늘 가던 길이었던 붓 뚜껑의 행로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느긋해하는 이도 없지 않으나 이번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어느 때보다 각 정당과 후보자들의 긴장감이 팽배해 있다. 유권자도 마찬가지다. ‘네 컷짜리 만화보다도 볼 게 없는’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로서는 모처럼 관심을 가질만한 판세다.

 

 이번 선거엔 관전 포인트가 없는 것도 아니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는 동안 하나도 변한 게 없는 이 나라의 정치가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하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를 소중한 한 표로 보여줄 때다. 구심력을 가진 정권 심판세력에게 힘을 몰아주어 변화의 추동력을 갖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대구가 변해야 대한민국이 변한다’는 가설을 확실히 입증해 보일 기회가 왔다. 변화를 갈구하는 젊은이들이 조금만 더 투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한다면 못 이뤄낼 선거 혁명이 아니다.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는 링컨의 말을 환기할 때다. 이러한 때 공공적 역할과 가치를 외면하고 사생활에 함몰된 인간을 지칭하는 ‘천치바보’(idiot)’ 소리는 듣지 말아야겠다. ‘배알’이 없다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되겠다.

 

 

권순진

 

Heros - William Joseph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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