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스크랩] 저울 / 이영춘 본문
저울
이영춘
그녀의 눈금이 한 쪽으로 기울어진다
세상과 맞서 팽팽하게 세상을 당기던 몸
몸의 무게가 가랑잎 같은 깃털로 발가락을 세운다
새 길을 세우는 붉은 이정표
몇몇 손들이 저울추를 바로 세우려 바람의 무게를 빌어온다
무게는 왼쪽으로 기울어지고
파랗게 눈 뜬 우리들은 들고양이처럼 푸른 광채를 뿜으며
어둠이 기우는 쪽으로 귀를 세운다
새의 깃털 같은 오후, 오후의 미열은 초침으로 흔들리고
동공은 우리들 시야를 떠난 지 오래다
멀리서 앰뷸런스 달려오는 소리
긴 복도 한 끝으로 흰 광목천을 덮은 한 그림자 멀어져 가는 소리
빗줄기는 창을 두드리고
빗물 속에 보퉁이를 내려놓은 그녀가
산 중턱을 넘어가고 있었다
새벽이었다 추錐가 한 눈금을 넘어선 그 자리는
—《현대시학》2016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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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춘 / 1941년 강원도 평창군 봉평 출생. 197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꽃 속에는 신의 속눈썹이 보인다』『슬픈 도시락』『봉평 장날』『노자의 무덤을 가다』『신들의 발자국을 따라』외.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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