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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감상

[스크랩] 저울 / 이영춘

오선민 2016. 5. 30. 17:58

저울

 

   이영춘

 

 

 

그녀의 눈금이 한 쪽으로 기울어진다

세상과 맞서 팽팽하게 세상을 당기던 몸

몸의 무게가 가랑잎 같은 깃털로 발가락을 세운다

새 길을 세우는 붉은 이정표

 

몇몇 손들이 저울추를 바로 세우려 바람의 무게를 빌어온다

무게는 왼쪽으로 기울어지고

 

파랗게 눈 뜬 우리들은 들고양이처럼 푸른 광채를 뿜으며

어둠이 기우는 쪽으로 귀를 세운다

 

새의 깃털 같은 오후, 오후의 미열은 초침으로 흔들리고

동공은 우리들 시야를 떠난 지 오래다

 

멀리서 앰뷸런스 달려오는 소리

긴 복도 한 끝으로 흰 광목천을 덮은 한 그림자 멀어져 가는 소리

빗줄기는 창을 두드리고

빗물 속에 보퉁이를 내려놓은 그녀가

산 중턱을 넘어가고 있었다

새벽이었다 추錐가 한 눈금을 넘어선 그 자리는

 

 

                       —《현대시학》2016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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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춘 / 1941년 강원도 평창군 봉평 출생. 197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꽃 속에는 신의 속눈썹이 보인다』『슬픈 도시락』『봉평 장날』『노자의 무덤을 가다』『신들의 발자국을 따라』외.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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